[조선일보 제공] 7일은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지 88주년 되는 날. 그러나 공산당 집권 시절, 국가 최대의 명절이자 국경일이었던 이날은 올해부터는 국경일이 아니다. 러시아 정부는 그 대신 1612년 러시아가 폴란드의 지배에 맞서 승리한 11월 4일을 `국민통합의 날` 국경일로 지정했다.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도 않는 이날을, 러시아 공산당은 자신들만의 조촐한 행사로 `의미`를 되새겼다.
◆초라한 공산당 전당대회=이날 공산당원 2000여명은 붉은 광장에 안치된 레닌 묘소를 참배했다. 소련 시절에는 이 혁명 기념일에 전국적으로 2000만명 이상이 레닌의 묘소를 찾았었다.
7일 낮, 모스크바 시내 말르이-수하레프스키 3번지의 공산당 중앙당사. 공산당을 상징하는 적색기와 더불어 레닌상이 여전히 곳곳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 옛날 위용은 간 곳이 없다. 최고급 러시아 승용차인 `질`과 외제 차량이 문전성시를 이뤘던 공산당사에는 러시아제 대중차인 `볼가`만이 주차돼 있었다.
공산당은 지난달 29일 당 중앙위원과 대의원 252명만이 참가한 가운데, 모스크바 교외에서 조용히 전당 대회를 가졌다. 소련 시절 전당대회는 권력의 상징인 크렘린궁에서 장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국가 최대의 행사였다. 새로운 권력자의 탄생을 알리는 장(場)이었다. 레닌에서 스탈린, 그리고 고르바초프까지 전당대회를 통해 최대 권력자가 됐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된 뒤 공산당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해갔다. 의회 내 비중도, 2003년 총선 전까지는 하원 의석(전체 450석) 중 100여석을 차지해 제1당이었지만, 이제 공산당은 47석의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작년 3월 대선에서도 공산당 후보로 나선 니콜라이 하리토노프는 13.7%의 득표율에 그쳤다.
정치학 교수이자 라디오 방송 토크쇼 진행자인 예브게니 알바츠는 “어느 날 갑자기 공산당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일한 전국 정당이자 실질적인 유일 야당이었던 공산당이 이처럼 추락했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파벨 이사예프는 “공산당이 현 정부 비판에는 능해도,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지 못해 민주주의에 익숙해진 젊은층에게 배척당한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혁명 포기하고 대변신 중=공산당은 최근 전당대회에서 당 강령을 수정하는 등 변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 혁명론을 버리고, 부르주아(중산계급)와의 전략적 연대를 모색하는 강령을 채택했다. 쇄신을 위해 공산당의 기본 이념까지 스스로 바꾼 것이다.
겐나디 주가노프 당수는 “러시아에서 농민과 노동자가 중심이 된 사회주의 혁명은 더 이상 당의 의제가 될 수 없으며,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며 “이제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혁명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이란 중산층을 비롯한 사회 각 계층, 그리고 다양한 조직과 집단을 지원하면서 정권을 창출하는 이념”이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는 현재 관료집단과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등 우파 계열이 내부적으로 분열된 상태”라며 “이 와중에 공산당은 부르주아·민주주의 성격을 띤 ‘레드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좌익과 우익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해 정권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공산당은 2007년 총선과 2008년 대선에서 대반전을 노린다. 중산층과 유능한 젊은이들을 유치하고, 자본가를 대거 영입해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 뚜렷하다. 크렘린궁과 적대 관계인 호도르코프스키 유코스 전(前) 회장 세력과의 전략적인 제휴설도 대두된다. 드미트리 아브라미노프 사무총장은 “전국에 1800만명의 골수 당원을 확보했으며,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국에서 2700만루블(약 9억8000만원)의 모금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정치분석가인 글레브 파블로프스키는 “공산당은 현재 붕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위력적”이며 “갑작스런 소련 붕괴로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고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한 국민들이 여전히 공산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공산당의 변신은 성공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