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어제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또다시 동결했다. 기준금리 동결은 지난해 2월 이후 13차례 연속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한은 설립 이래 최장기 연속 동결 기록이다. 이에 따라 연 3.5% 수준의 고금리가 1년 7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1일 금통위 회의 후 “이제는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을 준비할 상황”이라며 금리 인하가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그러나 치솟는 집값과 급증하는 가계빚이 발목을 잡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32% 올라 주간 상승폭으로 5년 11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집값이 오르자 ‘영끌’, ‘빚투’가 되살아나며 가계대출도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은 3년 3개월 만에 최대 증가폭(7조 2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집값 상승과 가계빚 증가는 경제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폐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높은 이자 부담으로 소비자들은 소비 여력이 고갈돼 지갑을 닫고 있고 기업들은 예정된 투자 계획을 철회하거나 시기를 늦추고 있다.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감소는 극심한 내수 부진을 낳으며 취약 분야인 자영업자와 영세기업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2분기(4~6월) 성장률이 마이너스권(-0.2%)으로 추락하며 경기침체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지난달 물가가 소폭 올랐지만 여전히 4개월 연속 2%대를 유지 중이며 한은도 올해 연간으로 2.5% 선에서 안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9월 기준금리 인하가 확실시되고 있다. 집값과 가계빚 우려가 크지만 이는 금융 당국의 미시적 대책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모든 조건이 100% 충족될 때까지 기다리면 늦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물가에서 경기 쪽으로 옮겨야 할 때다. 이달 초 미국발 경기침체 공포가 몰고 온 글로벌 증시 폭락 사태를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