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퇴임하는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그제 마지막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수사력 부재 등 외부 비판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오해가 많았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는 공(功)이 없다고 보는 것 같은 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공수처에 중요한 우선순위를 말하자면 독립성, 중립성이 첫째”라고 했다. 여야의 극한 대치와 갈등 속에 출범한 신생 조직을 이끌며 겪은 고뇌와 소신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백번을 이해하더라도 공수처 출범 후의 3년 궤적은 무능, 부실과 정치적 편향으로 얼룩져 있다. 직접 수사해 기소한 사건이 단 3건에 불과한데다 이 중 2건은 항소심까지 무죄가 선고됐고 1건은 1심이 진행 중이다. 그동안 청구한 5건의 구속영장도 법원에서 기각됐다. 김 처장이 지난해 초 “가시적 성과물을 내놓는 데 역량을 쏟겠다”고 말했지만 변명의 여지없는 심각한 수사력 부족이다. 한술 더 떠 공수처는 문재인 정부시절 대표적 친문 검사로 손꼽히던 이성윤 검사장에 대해서는 황제 의전 조사로 논란을 불렀다. 야당과 언론에 대한 무더기 통화 내역 조회로 정치 공세에 휘말리기도 했다.
김 처장의 처신도 문제다. 그는 지난해 11월 여운국 공수처 차장과 후임 공수처장 인선을 놓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나며 인사 개입 논란을 자초했다. 현행법에 공수처장이 후임자를 추천할 권한이 없음을 감안하면 부당한 영향력 행사로 비칠 수 있는 행위였다. 후임자 예상을 말한 것이라고 군색한 해명을 내놨지만 그는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출석 조사를 요구받고도 아직 응하지 않고 있다.
공수처 1기에 쏟아진 비판과 불신은 모두 자업자득이다. 공수처가 3년 동안 쓴 예산은 연평균 152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출범 전 입법 과정에서부터 여야 대치 등 극심한 갈등을 부른 조직이 혈세만 낭비하는 현실을 이대로 방치해야 할지 정부와 국회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공수처가 또 다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면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근본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공수처를 향한 질책과 폐지 요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