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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화웨이 논란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국내 기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에 SK하이닉스의 LPDDR5 D램이 탑재된 경위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반도체 분석·컨설팅회사 테크인사이트에 의뢰해 메이트60 프로를 해체한 결과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가 사용됐다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 명단에 올린 뒤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수출 규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는 해명이다.
업계와 전문가들도 SK하이닉스가 미국의 규제 리스크를 감수하고 화웨이와 거래했을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수차례의 유통 단계에서 중국으로 우회 수입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의 주요 유통구조는 SK하이닉스 같은 제조업체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 외에도 대리상을 통한 위탁판매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등이 있다. 창고에 쌓아둔 메모리를 필요한 기업들끼리 거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메모리는 범용 제품이기 때문에 이 같은 비공식 거래도 가능하다.
더욱이 대표적인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회사는 삼성전자(005930)와 미국 마이크론까지 3곳이다. 세트업체로선 전자제품을 만들기 위해 3개 회사 중 한 곳의 제품을 들여와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대만 매체 디지타임스는 화웨이폰에 미국 마이크론 메모리도 탑재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은 “메모리 제품은 정상적인 유통 경로 외에 다른 방법으로도 중국에 많이 흘러가곤 한다”며 “일개 기업이 모든 유통 경로를 관리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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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쟁점은 화웨이가 어떻게 7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탑재했느냐다. 화웨이폰에는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SMIC가 생산한 AP ‘기린 9000S’가 적용됐다. 업계에선 EUV(극자외선) 장비가 아닌 DUV(심자외선) 장비를 사용해 7nm 칩을 만든 것으로 분석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중국에 14nm 이하 시스템 반도체, 18nm 이하 D램 및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제조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올해에는 DUV 장비까지 규제범위를 넓혔다. 이 같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7nm 시스템 반도체를 만든 만큼 시스템 반도체 관련 장비 수출 통제는 보다 강화할 여지가 있다.
시스템 반도체 관련 규제가 국내 메모리 기업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운영하는 시설은 메모리 생산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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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와 전문가들은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유예 조치의 연장에 문제는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유예 조치를 연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화웨이폰에 관한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하지만 현재로선 추이를 지켜보되 과한 우려는 불필요하단 것이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공급망 교란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미국이 유예 조치를 연장하지 않을 확률은 낮다”며 “다음달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 미 당국이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할 시간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의 규제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제대로 막지는 못한 만큼 미국이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우리 정부가 나서서 국내 기업의 상황과 이해관계를 미국에 잘 전달해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이 제재 효과를 높이기 위해 수단을 강화할 여지는 있다”며 “우리 기업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