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리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차이콥스키 발레 모음곡''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과 협연
''호두까기 인형'' 등 어린이 위한 기획도 돋보여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피아니스트] 한 공연의 성패는 프로그램 선곡부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무슨 곡을 어떤 순서로 구성하느냐는 청중을 효과적으로 유인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과 다름없다.
|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차이콥스키 발레 모음곡’ 공연 장면. 다비트 라일란트 음악감독의 지휘로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과 대니 엘프만의 ‘첼로 협주곡’을 아시아 초연하고 있다. (사진=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
|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국립심포니)의 공연은 그 이튿날인 어린이날(5월 5일)을 헤아리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음악에 담은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첫 곡을 열었고, 동화의 환상과 모험이 깃든 차이콥스키의 발레 모음곡(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으로 후반부를 채웠다. 어린이 청중에게 친근히 다가가고픈 기획력, 그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국립심포니의 예술감독인 다비트 라인란트는 이 공연의 취지를 이렇게 짚었다. “이 세상 모든 어린이가 한번쯤은 음악에 몰입해 보길 바란다. 살다 보면 때론 현실이 아닌 환상적 평행 세계가 필요한 순간이 있지 않던가. 이때 음악은 다른 나라, 다른 가치, 다른 문화로 인도한다.”
어린이 청중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악기를 외교관(ambassador)이라 호명하며 전 세계에 첼로가 가진 음색의 깊이를 전파해 온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이 협연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 공연의 백미는 아시아 초연이란 상징을 지닌 대니 앨프만의 첼로 콘체르토(협주곡)이었다.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팀 버튼과의 협업으로 화려한 입지를 다졌던 앨프만은 최근 콘서트홀로 그 활동 영역을 야심차게 확장하는 중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영화음악의 상업성과 무관할 수 없던 그의 음악 세계가 예술적 완성도를 온전히 성취할 수 있을까. 새로운 첼로 레퍼토리 발굴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고티에 카퓌송은 2022년 신작으로 앨프만에게 콘체르토를 위촉했다. 파리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이번 국립심포니와의 협연은 아시아 청중을 최초로 만나는 뜻깊은 무대였다.
|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차이콥스키 발레 모음곡’ 공연 장면. (사진=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
|
앨프만의 첼로 콘체르토는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1악장에선 팝 음악에서 들릴법한 이쁘장한 선율을 첼로 독주에 맡기고 현악기군은 배경음향으로 물러나 온건한 화성으로 다층적인 겹을 이루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반면 2악장에선 음향의 실험실처럼 과감한 현대성이 느껴졌다. 방향을 종잡기 힘든 무궁동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데, 활대로 현을 두드려 연주하는 콜 레뇨(col legno, 활의 나무 부분으로 현을 두드리 주법)와 타악기 글로켄슈필의 투명한 사운드가 더해져 새롭고도 낯선 청각적 경험을 확장해 주었다.
명상적인 3악장에선 오케스트라와 독주 악기 사이 두 음향체의 대비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은 듯, 낮은 음역의 첼로 솔로가 종종 오케스트라 총주에 먹혀들었다. 앞으로 무대의 임상경험을 거듭하며 개선되어야 하겠는데, 작곡가가 살아있는 작품의 장점은 이럴 때 발휘될 만하다. 4악장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융해시킨 용광로와 같았다. 누군가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다 호평할 것이었고, 누군가는 잡탕과 다름없다 혹평할 것이었다. 연주 시간이 장장 36분에 이르는 이 거대한 첼로 협주곡이 초연의 일회성에 휘발되지 않은 채 고전의 전당에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대 위 풍부한 임상경험과 청중의 꾸준한 관심이 무엇보다 절실할 것이다. 5월 4일, 국립심포니의 공연은 어린이 청중과 아시아 초연을 동시에 아울렀던 기획력이 돋보였다. 부단히 진화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