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 모 빌딩의 지하 대강당. 토요일이었지만 웹소설 작법을 전수받기 위해 모여든 수강생들로 가득 찼다. 웹소설 작가양성 프로그램 문피아 아카데미의 ‘판타지 클래스’(6기) 강의 마지막 날. 3개월만에 대면으로 마주한 수강생들은 웹소설의 매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같은 답들을 쏟아냈다.
전체 수강생 101명 중 이날 현장에 모인 수강생은 총 63명. 코로나19 방역지침 탓에 인터넷 중계로 참여한 36명까지 포함하면 수강생 대부분이 참석했다. 국어국문과·문예창작과 출신부터 대학생 취업준비생 회사원까지, 2030(84%) 지원자가 가장 많았다. 2019년 5월 웹소설 강의를 처음 시작한 문피아는 웹소설계 신인작가 등용문으로 통한다. 전체 활동작가 수만 7만여명, 이용자 수 120만명을 거느린 원조 격인 웹소설 플랫폼으로 최근 네이버웹툰에 인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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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웹소설 전성시대’다. 요샛말로 ‘찐’(진정) 열풍이 맞다. 온라인 콘텐츠 소비에 익숙한 MZ세대뿐만이 아니다. 전업주부, 공무원, 은퇴 직장인, 검사, 경찰, 의사까지 웹소설을 읽는 건 물론이고, 일부는 ‘주경야작’하며 프로작가를 꿈꾼다. ‘B급 비주류 문학’은 옛말이다.
현장에서 만난 수강생 김모(27)씨는 문창과 출신이다. 그는 “공장에서 볼트 조이는 일을 하면서 취미로 글을 쓰다가 우연히 모집글을 보고 지원했다”며 “이 바닥은 문단과 달리 형식이나 제약이 없고 빠른 사이다식 전개가 강점이다. 직관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알흘(20·필명)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웹소설을 즐겨보던 덕후였다가 작가에 도전했다. 알흘씨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하위문학으로 여겨져 타인에게 ‘웹소설을 본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세대 차이가 아닐까 싶다. 지금 1020 사이에선 재밌는 웹소설을 서로 추천한다. 웹소설이 드라마화 되다 보니 성인들도 많이 찾고, 대중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며 “오래오래 사랑받는 작가가 목표”라고 귀띔했다.
강의 현장도 수강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이날 강사로 나선 ‘신입사원 김철수’를 쓴 인기 작가 오정(42·필명)은 수업 종료 후에도 수강생들의 질문 세례에 1시간 더 수업을 진행해야만 했다. 오정 작가는 독자들을 결제하게 만드는 캐릭터의 조건으로 “완벽하지 않은 공감받을 만한 인물이어야 한다”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경험을 토대로 쓰면 가장 쉽고 재미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웹소설은 종이책, 전자책과 달리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장르소설을 말한다. 보통 편당 5500자로 구성돼 5분내에 읽을 수 있고, 1편당 100원 정도의 소액결제로 부담이 적다.
태동은 이우혁의 ‘퇴마록’,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등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 PC통신 문학이다. 이후 2000년대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 등 하이틴로맨스 계열의 인터넷 소설이 인기를 끌더니, 2013년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웹소설 등 대형포털사의 모바일 연재 플랫폼을 만나면서 대중을 빨아들였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웹소설 산업현황 및 실태조사’(2019)에 따르면 웹소설은 월평균 1만45건 등록됐고, 1일 평균 조회수는 201만2200회에 달했다. 현재 그 수치는 더욱 커졌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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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작가가 급증하는 이유는 ‘돈이 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다. 웹소설 작가의 수입이 웬만한 직장인보다 낫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들린다. 실제 억대 수입의 작가들이 급격히 늘었다. ‘나혼자 레벨업’, ‘전지적 독자 시점’ ‘닥터 최태수’ ‘템빨’ ‘화산귀환’ 등 인기작은 단일 작품 수입만 100억원이 넘는다.
웹소설 작가들은 자신의 유료작품 조회수에 따라 수입을 올리는데, 플랫폼 업체마다 다르지만 적게는 40%, 많게는 70%의 유료 결제분이 작가에게 돌아간다. 다만 작품 인기도에 따라 수입 편차가 큰 편이다. 한달에 100만원도 못버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1000만원 이상 버는 억대 연봉 작가도 있다.
전문가들은 웹소설의 원천 지식재산권(IP)의 확장성을 높게 평가한다. 웹소설은 웹툰·웹드라마에 비해 위험부담이 적고, 드라마 형식을 띠고 있어 대중화와 영상화에 적합해 투자비용 대비 IP확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자책 혹은 종이책 단행본으로 출간되면 2차 수익이 생길 수 있고, 웹툰이나 드라마, 영화, 음악, 게임, 애니메이션 등으로 이어지면 IP 수익으로 연결된다.
진입장벽이 낮은 점도 웹소설에 도전하는 이유다. 웹툰과 달리 전문적 장비 없이도 작업이 가능하고, 연령·경력에 구애받지 않아 입문이 용이하다. 순수문학계처럼 등단 과정 없이 웹소설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도전할 수도 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작가는 약사고, ‘왕세자의 살인법’을 쓴 ‘초연’이란 작가는 수원지방검찰청의 서아람 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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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열기는 대학가로도 번졌다. 일각에선 청년층의 취업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2019학년도에 국내 첫 웹소설창작전공을 신설한 청강문화산업대의 경우 2022학년도 모집 인원(76명)이 19학년도(30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수성대학교는 작년부터 웹툰스토리과를, 한국영상대는 2022학년도 수시모집을 앞두고 웹소설과를 만들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4년제 대학 최초로 국어국문학과 타이틀을 버리고 ‘웹문예학과’로 전면 개편했다. 21세기 웹 기반 문화예술을 선도할 창의적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다. 일반인을 위한 사설 강의도 많아졌다. KBS 서울사이버대 세종사이버대 서울디지털대 등도 웹소설 작가 양성과정을 운영 중이다.
오정 작가는 “최근 2~3년새 20대 젊은 작가 지망생들이 많아졌다”며 “코로나19 속 취업 상황이 좋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수십억대 돈을 버는 작가는 상위 5~10%에 불과하다”면서도 “도전하기 좋은 분야고, 독자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도전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