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이 되고 싶어' 출간 박상영 "잊고 있던 나, 잇고 싶어요"

김은비 기자I 2021.10.13 06:00:00

10대 퀴어 이야기 담은 소설
과잉의 시대 2000년대 다루며
감정 절제 못하던 사춘기 떠올려
점과 점 선으로 잇는 1차원처럼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 잇고파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2000년대는 한마디로 과잉의 시대였죠. 경제·문화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던 당시 한국을 전면적으로 다뤄보고 싶었어요.”

젊은작가상 대상과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박상영 작가는 최근 첫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문학동네)를 출간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이번 소설은 지난해 상반기에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전반부를 연재할 때부터 관심과 인기를 모았다. 소설은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지난 2002년, 한국의 지방 도시 D시에서 10대 퀴어 ‘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또래 친구 ‘윤도’와 가슴 저릿한 사랑, 자유분방한 ‘무늬’와 나누는 우정과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들이 ‘나’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진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박상영 작가
박상영 작가는 최근 이데일리와 서울 마포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장편소설을 쓰고 나서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다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첫 장편소설인 만큼 중간에 방향을 잃고 헤메기도 하며 평소보다 집필이 힘들긴 했다”면서도 “단편보다 디테일한 설정을 많이 넣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번 소설의 배경인 2000년대를 물씬 느낄 수 있게 싸이월드부터 피엠피에서 울려나오는 자우림·넬·콜드플레이의 노래, 캔모아 카페 등 당시 감성이 담긴 설정들을 잔뜩 넣었다.

2000년대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게 된 건 작가 스스로 10대를 보냈던 시절을 추억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10대는 나의 기원과도 같은 시기로, 가장 가능성이 많고 반짝였던 시기인 동시에 악몽같은 시기기도 했다”고 회상을 했다. 겉으론 밝았지만, 소설 속 아이들처럼 사춘기 시절 이해받을 수 없는 우울감, 외로움 등에 종종 시달렸다. 스스로를 어른스럽다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과잉된 감정을 절제할 수 없어 했다. 이런 스스로의 모습을 오랫동안 미워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평범한 사춘기 청소년이었던 것 같다”며 “이번 작품을 쓰면서 내 모습을 많이 인정하고, 비로소 그 시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박 작가는 동성애를 소재로 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 역시 퀴어다. 그는 “한국 문학에 퀴어 소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전에도 10대 퀴어를 다루는 것도 있었지만 더 많이 정면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해외에서는 문학이 아니어도 넷플릭스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상담소’, ‘스킨스’ 등 작품에서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많이 등장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여전히 금기시되거나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박 작가는 “내가 누구보다 제일 잘 얘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소설의 주요 이야기는 10대 아이들의 사랑이지만, 그 못지않게 책 속에는 부동산 가격과 학군으로 구획된 당대 아파트 단지의 생활상, 숨 막히는 대입 경쟁과 학교폭력 등 사회적 문제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대상을 그대로 담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지만, 그때만 해도 학교에서 집에 TV가 몇대인지,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부모님 학력사항이 어떻게 되는지 조사를 했다”며 “이런 줄세우기식 위계질서가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녹아났다”고 고개를 저었다.

작가는 이번 소설이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을, 혹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책 제목 ‘1차원이 되고 싶어’도 수학적으로 1차원인 직선이 점과 점을 연결하는 선이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박 작가는 “서로 상처를 주기도 위로를 얻기도 하며 관계를 맺어가는 주인공들 사이를 잇는 선의 의미도 있고, 단절시켰다고 믿은 과거의 나 자신과 이어지는 선분을 갖고 싶다는 의미도 있다”고 부연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