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부의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출소자를 위해 선뜻 기부금을 내는 이들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아이디어를 냈다. “일단 기업의 돈을 빌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실제 재범률이 감소하면 정부가 약속했던 돈을 돌려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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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P 교도소 사례를 시작으로 SIB는 영국은 물론 유럽 전역과 미주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영국에서는 실업 청년과 위기 가정을 위한 지원프로그램에 SIB가 도입됐고, 포르투갈에서는 저소득층 아동교육 프로그램, 핀란드에서는 난민 복지 프로그램을 위한 SIB가 이어졌다.
미국 유타주에서는 골드만삭스가 저소득층 아이 595명에게 조기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460만달러(약 50억)를 투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투자로 골드만삭스는 26만7000달러(약 3억)의 수익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SIB의 핵심은 정부가 투자자와 미리 계약을 맺고 성과에 따라 원금과 수익금을 보상하는 데에 있다. 성과가 좋으면 수익금이 올라가지만, 성과가 나쁘면 원금이 깎일 수도 있다. 그 말인즉슨 투자자 자신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정부로서는 수익금을 많이 줄수록 손해일까. 아니다. 미국 유타주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조기교육 프로그램을 받은 저소득층 아이들이 보충수업을 받지 않게 되면 정부는 보충수업 예산을 절감하게 된다. 그 절감액 중 일부를 떼어 수익금으로 주면 된다. 물론 골드만삭스는 이 돈을 다시 SIB에 투자할 확률이 높다. 정부와 기업, 아이들 모두에게 ‘땡큐’다.
요컨대 경기도는 기초생활수급자 1명에게 매년 약 1200만원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 그런데 800만원 상당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이 수급자를 탈수급 시킬 수 있다면 1명당 400만원의 보조금을 아낄 수 있다. 더불어 무작정 돈을 쥐여주는 복지가 아니라 수급자 스스로 삶을 개척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도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해봄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237명(탈수급률 20%)의 수급자가 보조금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1200만원의 보조금에 237명을 곱하면 약 28억원이 나온다. 해봄 프로젝트의 총 사업비인 약 19억원을 빼도 경기도는 9억에 달하는 예산을 남길 수 있다. 투자자에게 줄 수익금은 이 안에서 측정하면 된다.
만약 당신이 해봄 프로젝트에 5000만원을 투자했다면? 최소이익 발생구간인 탈수급률 12%(탈수급자 143명)에 들어서면 첫 수익금이 나온다. 약 333만원이다. 이후 탈수급률이 1%(탈수급자 11~12명) 올라갈 때마다 수익금은 약 117만원씩 더해진다. 최대이익 발생구간인 탈수급률 20%(탈수급자 237명)에 이르면 수익금만 1233만원이 된다. 237명의 기초생활수급자의 자립을 돕고도 원금까지 총 6233만원을 거머쥘 수 있다.
각각의 사연과 환경에 맞는 맞춤형 관리 서비스가 설계됐다. 경제적인 이유로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는 취업 알선이, 정신질환자에게는 의료 지원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에게는 따뜻한 커뮤니티가 제공됐다.
7년 뒤 놀랍게도 HMP 교도소의 재범률은 영국 전체 교도소의 평균 재범률보다 9.02%나 낮아졌다. 목표였던 7.5%를 훌쩍 뛰어넘은 성과였다. 투자한 17개 기업은 연간 3%의 수익률을 받게 됐고, 정부는 해당 프로그램을 영국의 모든 교도소에 도입하기로 했다.
결국 성공한 하나의 SIB가 정부와 기업, 출소자와 인근 주민들 모두를 웃게 한 셈이다. 래퍼 사이먼 도미닉의 노래 ‘정진철’의 마지막 가사를 인용하면 이 상황을 좀 더 맛깔나게 표현할 수 있다. “이 채권으로 덕 볼 사람은 누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