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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억 '웃는 남자'…무대·음악 '합격', 스토리 '글쎄'

장병호 기자I 2018.07.24 06:00:00

EMK뮤지컬컴퍼니 두 번째 창작뮤지컬
제작기간 5년…올해 최고 화제작
프랭크 와일드혼 음악 웅장 그 자체
극적 전개 부족한 스토리 아쉬워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요즘 말로 ‘모든 것을 가진 상위 1%’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정치·사회적인 메시지와 함께 관객을 사로잡을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있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로버트 요한슨 연출은 지난 3월 토크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처럼 말했다. 대형 뮤지컬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정치·사회적인 메시지’란 표현에 관심이 갔다. 그러나 지난 10일 막을 올린 공연에선 이 말의 방점이 다른 데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였다.

제작비 175억원에 제작기간 5년. 규모로 볼 때 ‘웃는 남자’는 올해 공연계 최고 화제작으로 꼽히기에 충분했다. ‘엘리자벳’ ‘몬테크리스토’ ‘팬텀’ 등의 대형 뮤지컬로 시장을 견인해온 EMK뮤지컬컴퍼니가 ‘마타하리’에 이어 선보인 두 번째 창작뮤지컬이란 점도 관심을 끌었다. 뮤지컬계 새로운 흥행보증수표로 떠오른 가수 박효신의 컴백 등 화제성도 여느 작품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였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베일을 벗은 ‘웃는 남자’는 EMK뮤지컬컴퍼니의 역량을 집약해 보여준다. 특히 무대세트와 의상은 제작비에 걸맞게 한국 최고 수준이다. 가시덤불 형태로 터널을 형상화한 세트는 무대를 꽉 채웠고,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귀족부터 하층민까지 다양한 계층을 보여주는 의상은 눈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엔딩장면은 영화에서 볼 법한 환상적인 이미지를 무대기술로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줘 흥미로웠다.

음악은 전작 ‘마타하리’에 비해 다채로움을 채워 귀를 만족시켰다. “고딕스러우면서도 다양한 색깔을 담고자 했다”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말처럼 웅장함과 우아함, 로맨틱함과 비장함을 넘나드는 선율로 보는 이의 마음을 채웠다. 그윈플렌과 데아가 함께 부르는 ‘나무 위의 천사들’ ‘넌 내 삶의 전부’, 그윈플렌이 홀로 부르는 ‘그럴까’ 등은 킬링 넘버로서의 가능성도 엿보였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EMK뮤지컬컴퍼니의 전작들처럼 스토리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은 원작인 빅토르 위고의 소설 속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란 문장을 전면에 내세운다.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귀족사회의 추악한 민낯과 이들이 만둔 그늘에서 불행한 삶을 이어가는 하층민의 모습을 담아낸다.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를 통해 ‘웃음’을 흉터로 갖게 된 주인공 그윈플렌은 이러한 비극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요한슨 연출이 “모든 것을 가진 상위 1%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그러나 작품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립을 극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대신 출생의 비밀 등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요소들만 보여줄 뿐이다. 음악이 중심인 뮤지컬 특성상 소설 같은 극적인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웃는 남자’는 극적인 대립과 갈등을 강화하는 스토리의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위고의 또 다른 대표작 ‘레미제라블’이 뮤지컬로도 원작의 주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는지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박효신·수호·박강현이 그윈플렌 역으로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팬텀’ 이후 1년여 만에 돌아온 박효신은 변함없는 가창력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다만 복잡한 사연을 가진 인물을 다소 평면적으로 연기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아울러 민경아·이수빈이 데아로, 정성화·양준모가 우르수스로, 신영숙·정선아가 조시아나로 무대에 오른다. 8월 2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서, 9월 4일부터는 중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로 무대를 옮겨 공연한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웃는 남자’의 한 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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