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발’ 세우는 유통사, ‘패션왕국’ 도전 3색 전략

최은영 기자I 2016.12.13 05:00:00

판매에 제조까지 넘보며 패션 3강에 도전
롯데, 글로벌 SPA 브랜드에 투자&패션 유통 사업 강화
신세계, 자체브랜드 육성..현대, 패션업체 인수 ‘유통과 시너지’

[이데일리 최은영 기자]롯데·현대·신세계 등 국내 ‘빅3 유통사’가 ‘패션왕국’ 도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패션업계는 개성공단 폐쇄, 사드(고고도지역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한류시장 위축 등으로 고전했다. 장기화한 불황에 돌발 악재까지 겹치며 브랜드를 철수하고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이 잇따랐다. 반면 유통업체는 자체 유통망을 앞세워 제조에까지 눈을 돌리며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빅3 유통사 나란히 패션사업 강화

대표적인 것이 현대백화점그룹과 SK네트웍스의 ‘빅딜’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자회사 한섬을 통해 SK네트웍스 패션사업을 3261억원에 인수하는 영업 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의 연간 예상 합산 매출은 1조3500억원으로,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한섬은 이랜드, 삼성물산 패션부문, LF에 이어 국내 4번째로 큰 패션기업으로 도약하게 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12년 1월 한섬을 인수하며 패션사업에 진출했고 4년 만에 SK까지 손에 넣으면서 패션 분야에서 날개를 달게 됐다. 패션사업이 유통 못지않은 주력사업으로 떠오른 셈이다.

현대백화점은 타임, 마인, 시스템 등 국내 고급 여성복 분야에서 강점을 지닌 한섬에 타미힐피거, DKNY, 클럽모나코 등 SK네트웍스의 탄탄한 수입 브랜드 경쟁력을 접목시켜 패션사업을 키우는 동시에 백화점·홈쇼핑 등 유통 채널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또 다른 유통 강자인 롯데와 신세계도 각기 방식으로 패션 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롯데는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 패션 브랜드에 투자해 배당수익을 챙기는 한편 자체 마트 판매용 의류 브랜드를 강화하고, 패션 전문 미니 백화점으로 유통망을 확고히 하는 복합 전략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을 운영하는 롯데쇼핑은 국내에서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이자, 2년 연속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유니클로의 국내 판매법인인 에프알엘코리아의 지분 49%를 갖고 있다. 롯데쇼핑은 전 세계 SPA 1위 브랜드인 스페인 인디텍스그룹의 자라도 80대 20 비율로 합작사를 설립해 국내로 들여왔다.

롯데쇼핑은 2011년 35억원의 배당금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12년 117억원, 2013년 68억원, 2014년 131억원, 2015년 195억원, 올해 135억원 등 지금까지 유니클로 사업으로 681억원의 배당수익을 챙겼다. 이는 롯데쇼핑이 초기 투자와 두 번의 유상증자로 출자한 총액인 117억원의 6배에 달하는 액수지만 유니클로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비하면 배당액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패션 사업을 통한 수익성 강화 차원에서 롯데가 내세운 카드가 바로 롯데마트의 자체 브랜드 사업 ‘테(TE)’다. 테는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 고급화를 시도하고 있다.

젊은 층을 겨냥한 패션 전문 미니백화점 ‘엘큐브’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3월 홍대점을 시작으로 지난달 이대점, 2주 만에 다시 가로수길에 3호점을 열며 백화점을 찾지 않는 젊은층을 공략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엘큐브 1호점인 홍대점은 개점 열흘간 매출 3억6000만원을 올리며 당초 목표를 133% 초가 달성했고 이대점 역시 첫 열흘간 매출이 3억2000만원 정도로 목표치를 110% 가량 웃돌았다”며 “특히 10~20대 젊은층이 구매 고객의 80%를 차지하는데 내부적으로는 젊은 층을 찾아가서 흡수한다는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시장 성숙기, 유통사 낀 브랜드만 생존

신세계그룹은 이마트 자체 패션 브랜드 ‘데이즈’(DAIZ)를 종합 패션 브랜드로 리뉴얼했다. 기존 의류만 선보이던 것에서 스포츠와 신발, 잡화까지 상품군을 확대하고 해외 명품의류,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와 협업해 경쟁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이마트에 따르면 데이즈는 2012년 2642억원에서 2015년 4400억원으로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올해 11월까지 매출 4200억원을 넘어 연말 전년대비 3~5% 신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국내 SPA 브랜드 2위 규모다.

신세계백화점도 자체 캐시미어 전문 브랜드 ‘델라 라나(Della Lana)’를 출시하며 의류 제조에 뛰어들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성숙기에 접어든 패션산업의 향후 성패는 유통력이 좌우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계열사인 한섬과 신세계그룹의 패션계열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소비 위축으로 국내 의류시장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나름 선전할 수 있었던 건 모기업인 유통업체의 출점 덕분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니클로가 단일 브랜드로 패션기업 전체에 버금가는 1조원대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국내 정착 초기 롯데의 탄탄한 유통망에 기인한 영향이 컸다.

백화점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업체가 직접 상품을 기획·제조하면 트렌드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통단계를 낮춰 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면서 “불황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소비 트렌드가 계속되고 있고 브랜드를 띄우기 위해선 플랫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탄탄한 유통력을 갖춘 기업이 패션시장에서도 유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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