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차 주부가 평가한 추석맞이 10분 상차림
한 집안의 장남에게 시집을 온 저희 엄마는 37년간 조상님 기일의 제사상과 명절 차례상을 손수 차려오셨습니다. 특히 짜지 않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는 사는 것을 꺼려해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각종 전과 나물을 준비하고, 추석에 송편을 빚는 일은 당연한 명절의 풍경이었습니다.
요즘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방앗간에서 쌀가루를 빻아와 물을 넣고 반죽을 한 뒤 깨와 설탕, 녹두, 콩이나 계피 가루 등으로 소를 만들어 가족들과 둘러앉아 손자국을 내며 송편을 빚어야 ‘만족스런 추석이다’라고 생각하셨던 것이죠.
하루 반나절 내내 앉아서 빚은 송편과 기름 냄새를 맡으며 부친 전, 직접 엿기름 가루를 우려내 만든 식혜만을 고수했던 엄마 앞에 간편식 송편과 모듬전, 호박식혜를 내놓아 보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이마트 피코크 모싯잎 송편(600g, 6680원)과 호박 송편(600g, 5980원), 모듬전(470g, 8880원), 그리고 안동 김유조 단호박 식혜(460㎖, 2180원)입니다.
이를 드신 엄마의 전체적인 평은 ‘나쁘지 않다’ 였습니다. ‘냉동 식품’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있는 엄마의 점수로는 후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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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은 집에서 빚은 것보다 덜 쫄깃하지만 깨와 콩가루가 어우러진 소는 달지 않아 좋고, 떡 반죽도 적당히 간간하다는 평이었습니다. 모싯잎 송편은 그 향이 깊지 않지만 데워서 막 꺼낼 때와 한 입 깨물었을때 느껴지고, 호박 송편은 호박의 향과 맛이 느껴지지 않지만 노란 빛깔이 참 먹음직스럽다고 하셨습니다. 양과 가격도 시장 떡집에 비하면 비싸지 않은 편이라네요. (엄마의 체감 물가에 따르면 떡집 송편 1㎏에 1만원. 서울 성북구 길음시장 기준)
마지막으로 단호박 식혜는 밥알이 들어있지 않아 좀 심심하지만 텁텁하지 않고 일반 식혜보다 깔끔한 맛이라는 게 엄마의 반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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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런 엄마를 보고 한 누리꾼이 피코크의 간편 조리 추석 음식을 보고 남긴 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손가락이 퇴행성 관절염이 와서 고통스러운데, 집에서 정성들여 만들면 좋겠지만 그러고나서 병원 다니느니 차라리 간편하게 사서 차례지내고 내 몸을 아끼렵니다”
또 이마트는 추석을 12~7일 앞둔 이달 15~21일 피코크 제수용 간편가정식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9% 늘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모듬전 매출은 32.4%, 동태전과 모싯잎 송편은 각각 47.8%, 11.0%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러한 추세가 점점 더해지고 있는 이유는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과 1인가구·맞벌이 부부 등이 늘면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데 드는 돈·시간 등을 아끼려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됐겠죠. 더불어 엄마들이 명절마다 지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물론 엄마의 정성이 깃든 ‘종일 상차림’과 비교할 맛은 없겠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상차림 뒤에 엄마의 모습은 늘 씁쓸했습니다. 예(禮)와 정성을 차린 상차림도 좋지만 무엇보다 모든 엄마들이 가족과 ‘간편한’ 몸과 마음으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명절 연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