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대담]주영섭 청장 “대기업 의존 중소기업은 정부지원 효과없어”

박철근 기자I 2016.04.13 06:00:00

R&D 지원효과 및 수출 독려 위해 WC300 선정시 수출비중 높일 것
중견기업 위한 R&Dㆍ마케팅 예산 신설 추진…중견기업 단계별 지원책 마련
중기청 업무평가, 예산 확대 아닌 지원 기업 성장성으로 전환 필요

[대담=류성 벤처중기부장, 정리=박철근 기자] “중소·중견기업 관련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개별기업에 대한 지원보다는 산업 생태계를 개선해 자연스럽게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6일 주영섭(60) 중소기업청장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산업 생태계 재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초 기업인 출신 중기청장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업계에서는 주 청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기업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대기업 출신이 중소기업계 현실과 애로사항을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우려가 상존한다.

주 청장은 “삼성전자(005930), 현대자동차(005380) 등 대기업도 협력 중소기업의 발전없이는 생존하기 힘들다”며 “대기업 출신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은 안다. 하지만 대기업 사장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바로 협력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기청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진 철학 중 하나는 ‘중소기업 문제는 중소기업인이 풀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올바른 대·중소기업 관계 형성, 대학·출연연구소·해외기업과 시너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중소기업계 출신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중소기업 R&D(연구개발) 지원 혜택이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주 청장은 생태계 전환이라는 맥락에서 설명했다. 그동안 중소기업계에서는 정부로부터 받은 R&D 자금으로 생산성 향상·수익률 제고를 달성하면 원청업체인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후려쳐 실질적으로 생산성 향상이라는 과실을 대기업이 독식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주 청장은 “대기업 의존형 중소기업은 정부가 어떤 지원을 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결국 중소기업 스스로 납품처를 국내외로 다변화하면서 경쟁력을 갖춰야 정부의 지원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교세라 창업주인 이나모리 가즈오(84) 명예회장의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수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주 청장은 “가즈오 회장도 처음에는 자국 대기업에만 납품하려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당시 가즈오 회장은 지인이 말한 ‘최고의 제품이라면 왜 일본에서만 팔려고 애를 쓰느냐. 외국에 팔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에 정신이 바짝 들어 그 뒤부터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 지금의 교세라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오는 2020년이면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비중이 50%를 넘어 명실상부한 중소·중견기업 중심의 경제체제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소·중견기업이 세계 무대로 나가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는 “대기업은 해외 각국에 생산시설을 마련해 현지 인력 중심의 채용을 진행한다”며 “중소·중견기업의 수출이 늘어나 회사가 성장하면 그만큼 고용창출효과도 나타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견기업을 위한 다양한 지원 방안도 고민 중이다. 우선 중견기업을 △3000억원 이하(이하 연매출 기준) △3000억 초과~1조원 미만 △1조원 이상 등 3등급으로 분류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할 계획이다.

주 청장은 “연매출 3000억원 이하의 초기 중견기업은 중소기업에 준하는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의 법령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며 “중견기업을 위한 R&D와 마케팅 지원 예산을 마련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지원정책이 미진한 부분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 예산을 확보해 중견기업 관련 정책을 많이 내놓겠다”고 전했다.

중기청은 초기 중견기업을 위해 12개 지방중소기업청별로 ‘중견기업 수출담당관(가칭)’을 지정해 중견기업의 애로·건의사항 등을 온·오프라인으로 실시간 수렴하고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수출 독려를 위해서는 월드클래스300(WC300) 기업을 지정할 때 수출 실적이 좋은 기업이 WC300으로 선정돼 정책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지속 거론되는 중기청의 ‘부’ 승격에 대해 주 청장은 “중기청이 업무를 하면서 부처의 단위가 ‘청’이냐 ‘부’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며 “국무회의나 경제장관회의 등에도 정식 참여하면서 다양한 부처와 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모든 부처와 업무협약(MOU)를 체결하고 세부적으로 중소·벤처·중견기업 및 자영업자들이 발전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예컨대 문화체육관광부와는 콘텐츠 및 관광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콘텐츠 중소·벤처기업과 지역 전통시장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6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개별기업 지원보다는 산업 생태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 방인권 기자
- 취임 석 달이 되어간다. 그동안 많은 현장을 다녔는데 소감을 말한다면

△세계 경제침체로 인한 수출 감소로 중소·중견기업계가 불안해하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중소기업 방향의 핵심은 세계화와 수출 확대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기술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정책에 집중하고 마케팅, 인력, 자금 등 다른 제도들을 개선해 중소·중견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

중소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와 벤처·창업 생태계의 지속적 발전을 통해 자영업을 영위하는 과밀창업을 줄이고 일자리를 창출해 기존 자영업자도 재취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토록 하겠다.

-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입주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결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매일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진행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32개 업체를 직접 찾아가 애로사항을 들었다. 현재 입주기업들이 단기적으로 경영정상화를 이뤄 거래처에 납기를 맞출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입주기업 123개사 중 36곳은 경영정상화를 완료했다. 11곳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국내외 공장 인수·건설 또는 업종 전환을 계획 중이다. 장기적 경영정상화를 위해 지속 지원할 계획이다.

- 중소 납품·협력업체에 대한 원청업체의 불공정행위가 여전하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지만 원청업체의 불공정행위로 인한 중소기업 피해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중소기업의 피해가 큰 ‘부당 하도급대금 결정·감액’, ‘부당위탁취소’, ‘부당반품’, ‘기술유용행위’ 등 5대 불공정행위는 중점적으로 고발요청해 위법행위에 대한 사전억제력을 높이겠다. 중소기업의 취약한 법률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법률지원제도 설명회와 공정화 교육, 법률 자문 등도 병행할 예정이다.

- 중소기업적합업종을 포함한 동반성장위원회의 역할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데.

△동반위는 민간 자율합의기구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만 중기청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의 경우 사업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들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이들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분을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사업 실패 후 재도전에 나서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재도전 지원정책은 창업지원책과 맞물려서 생각해야 한다. 창업 시장이 과거처럼 돈을 빌려 창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투자를 받아서 창업을 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창업도 양적 증가보다는 질적인 증가가 중요하다.

재도전 지원정책을 강화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재도전이 필요없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 중기청에 대한 평가가 기존의 지원 확대가 아닌 지원책의 결과물을 두고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앞으로 중기청은 지원이 아닌 육성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이제는 예산 확보보다 지원을 받은 중소·중견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개념이다.

중소기업 육성시책에 대한 객관적인 효과 분석을 실시해 성과가 우수한 사업을 중심으로 입체성·연계성을 높인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겠다.

◇주영섭 중기청장은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에서 산업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옛 대우그룹의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주요 계열사에서 근무한 뒤 2000년 제너럴일렉트릭(GE) 써모메트릭스코리아 및 아시아태평양담당 사장을 하면서 센서사업을 했다.

2006년부터는 현대자동차그룹 부품 계열사인 현대오토넷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2010년에는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 주력산업총괄 MD로 자리를 옮겨 국가 R&D 정책수립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와 공대 산학협력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지난 1월 제14대 중소기업청장으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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