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울산 동구 방어동의 현대중공업(009540) 울산조선소 정문 앞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의 하소연이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조선소에서 나온 직원 한 명이 택시로 다가왔다. 그는 간만의 승객을 놓칠 새라 피우던 담배를 황급히 비벼 끄고 운전석에 올랐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005380), SK에너지 등 대형 사업장이 몰려 있는 울산은 소득 수준을 나타내는 1인당 지역내 총생산(GRDP) 규모가 2012년 6340만원에서 지난해 6100만원으로 2년 새 3.8% 감소했다. 올해는 6000만원선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2004년 4000만원, 2010년 5000만원을 넘어서면서 국내 최초 기록을 경신해 왔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여전히 국내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지만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비껴갈 만큼 탄탄했던 지역 경제 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튿날인 22일 찾은 경남 거제시의 대우조선해양(042660) 옥포조선소 인근 장승포항 식당촌은 밤 10시 전이었지만 불 켜진 곳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조선소 직원들만 믿고 살았는데 4월부터 발길을 뚝 끊어부렸어예. 이제 10시 넘어 장사하는 데 없심더.” 영업 중인 식당을 어렵게 찾아 들어가자 주인이 퉁명스럽게 던진 말이다.
한때 화이트칼라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 고졸 생산직 근로자들이 지역 경제를 이끌었던 울산과 거제, 포항 등 이른바 ‘블루칼라 특구’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임금 하락과 소비심리 위축을 불러와 민생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 지역의 블루칼라 근로자들은 8000만원을 넘나드는 평균 급여, 30년 이상의 근속 연수로 화이트칼라의 부러움을 샀다. 조선·정유·철강업체의 생산직 입사를 ‘고시’로 표현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 구조조정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올해만 4조원대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해양(042660) 직원들이 3분기까지 수령한 평균 급여는 4400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4% 감소했다. 포스코(005490)와 SK에너지의 3분기 기준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전년과 동일했다. 연말 성과급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 않기 때문에 총 수령액은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블루칼라 특구의 경기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불황과 더불어 노사 갈등도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임금협상 타결이 지연되면서 지역 상권으로 돈이 흘러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울산 동구의 한 식당 대표는 “임금협상이 끝나야 근로자들이 격려금이나 상여금을 받는 데 올해는 현대중공업이 지난 24일에야 겨우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고 현대차는 아직도 대치 중”이라며 “지난 추석 때도 돈이 풀리지 않아 고생했는데 연말도 현금이 돌지 않기는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블루칼라 특구
울산과 거제, 포항 등 고소득 생산직 근로자가 밀집한 지역. 조선·철강·정유·화학 등 수출 산업의 주요 생산 거점이기도 하다. 8000만원 이상의 평균 급여와 60세 정년 보장 등의 혜택을 누렸지만 지난해부터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임금 하락과 구조조정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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