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 소액기부에 눈 돌리는 대학들

신하영 기자I 2015.07.13 07:10:22

‘큰손’ 기업 기부금 줄자 소액기부 캠페인 잇따라
기준금리 1.5%···기금 운용 이자수익 감소한 탓도
대학들 모금 과열되며 ‘교수도 기부금 유치’ 강요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윤경욱 한국외국어대학 발전협력팀 부장의 하루는 동문 졸업생과의 저녁식사로 끝난다. 작년 2월 기획조정처에서 친정인 발전협력팀으로 복귀한 윤 부장은 대학가에서 손꼽히는 모금 전문가다. 윤 부장은 2006년부터 6년간 발전협력팀에서 모금업무를 담당했었다. 한국외대는 지난해 4월 개교 60주년을 앞두고 그를 다시 발전협력팀에 배치했다. 전년 31억원에 그쳤던 기부금 모금액은 윤 부장이 복귀한 지난해 45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대학들이 수년째 등록금이 동결되자 재정보전을 위해 기부금 모금에 두팔을 걷고 나섰다. 한국외대가 윤 부장을 모금 업무에 재배치한 이유도 모금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어서다. 중앙대와 숙명여대도 최근 모금담당 부서장이 모두 전임 경력자들도 재배치됐다.

◇ 사립대 기부금 수입 30% 급감

대학들은 2009년 이후 7년간 등록금을 거의 올리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난 뒤 고액 등록금 문제로 시끄럽자 정부가 대학에 ‘고통 분담’을 요구한 때문이다. 사립대 기준 등록금 평균 인상률은 △2010년 1.6% △2011년 2.2% △2012년 -3.9% △2013년 -0.45% △2014년 -0.3%를 기록했다.

등록금 수입이 사실상 감소한 만큼 기부금 모금이라도 늘면 다행이다. 하지만 대학 기부금 수입도 함께 줄었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전국의 사립대학 156개교를 대상으로 5년간(2009~2013년)의 기부금 총액을 조사한 결과 2009년 5418억원에서 2013년 3791억원으로 5년간 30%(1627억원)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기부금 모금액이 감소는 큰 손인 기업들이 기부금 규모를 줄인 영향이 크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기업의 대학 기부금은 2007년 1432억원에서 2013년 1236억원으로 13.7% 감소했다. 여기에 연말정산 특별공제 항목이던 기부금이 세액공제로 전환되면서 고액 기부자의 발길이 줄어든 것도 한 몫을 했다.

‘큰손’들의 기부가 줄면서 대학들은 소액기부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고려대는 지난 5월부터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소액 기부 캠페인 ‘KU PRIDE CLUB’을 출범시켰다. 개교 110주년을 맞아 동문·교직원을 포함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월 1만원을 내는 ‘십시일반’식 모금운동이다. 지난 8일 현재 캠페인 시작 8주 만에 651명이 2162계좌를 후원하기로 약정했다.

고려대는 이런 소액기부 캠페인에 맞춰 기부금 관련 소식지 ‘고대하다’를 창간했다.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한 동문 대상 모금 캠페인인 ‘후배사랑장학금’과 이번에 시작한 ‘KU PRIDE CLUB’에 참여한 소액기부자들에게 무료 배포된다.

박정배 고려대 기금기획본부 모금기획과장은 “기부자는 자신이 기부한 돈이 의미 있게 쓰였길 바라기 때문에 소액 기부자에게도 기부금 사용 현황·계획을 소식지를 통해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 티끌모아 태산…‘소액기부’ 캠페인 잇따라

연세대는 2012년부터 소액기부로 모금한 17억원을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의 사업비로 활용했다. 백양로 지하에 주차장과 편의시설을 조성하는 대규모 공사인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는 오는 10월 완공된다. 연세대는 50만원만 기부하면 백양로 지하 벽면에 명패를 걸어준다. 동문 1527명으로부터 5억5700만원을 모았다. 또 동문 재상봉행사를 개최, 83~86학번 동문을 초청한 자리에서 3년간 12억 원을 모금했다.

이화여대는 2010년 소액 기부 캠페인인 ‘선배라면’을 시작했다. 선배가 십시일반으로 1만원씩 갹출해 기금이 조성되면 후배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한다. 지금까지 5349명의 동문이 참여해 22억7000만원을 모았다. 대학 측은 지난해에만 444명의 재학생에게 4억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서강대는 2013년 9월부터 소액기부 프로그램 ‘알많이’를 운영 중이다. 모금액은 전액 재학생 장학금으로 사용된다. 대학 관계자는 “서강대의 상징인 알바트로스란 새가 알을 품는다는 의미로 ‘알많이’ 캠페인을 시작했다”며 “지금까지 동문 130여명이 참여해 1억5000만원의 장학금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대학들이 소액기부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금리 인하’ 영향도 있다. 과거에는 거액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운용해 투자·이자 수익으로 장학금 등을 집행했다. 하지만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덩달아 기금운용에 따른 수익이 급감했다.

윤경욱 한국외대 부장(대학발전기금협의회장)은 “금리가 2% 아래로 떨어지면서 기금을 운영해 얻는 수익이 급감했다”며 “차라리 요즘은 매년 소액 정기 기부를 모아 이듬해 장학금 등으로 소진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기기부자들이 1~2만원씩 낸 기부금이 10억 원을 넘으면 1000억원 기금의 이자 수익과 마찬가지다. 대학들이 소액기부에 주목하는 이유다.

◇ 교수 업적평가에 기부금 반영 논란

경희대는 지난해 9월 ‘경희미래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조인원 총장과 최신원 SKC 회장, 김성호 경희대 총동문회장,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동문 64명과 교내 인사 15명이 참여한다. 재계와 언론·의료·문화예술계 인사들로부터 ‘경희대 발전’에 도움이 될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다. 특히 경희대는 이를 통해 20억원의 기부금 약정을 받아냈다. 대학 발전을 위해 조언을 하는 과정에서 발전기금을 약속하는 위원들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경희대 관계자는 “출범 후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자문회의 등을 열고 있는데 학교의 발전계획에 공감하는 분들 중에는 기부를 약속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아예 학생 때부터 ‘기부’를 가르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학생 때 기부의 중요성을 배워야 졸업 후 기부금을 내는 동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양대는 오는 2학기부터 ‘자선(Philanthropy)’을 가르치는 교양과목을 개설한다. 과목명은 ‘자선의 이해와 실천’이다.

안종길 한양대 대외협력팀장은 “대학의 건학이념인 ‘사랑의 실천’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자선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정규 교양과목으로 개설키로 했다”며 “대학 재학시절부터 자선과 기부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졸업 후에도 이를 실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별로 모금 성과를 내려는 움직임이 과열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업적평가에 기부금 모금실적을 반영해 논란을 빚고 있다. 교수업적평가는 교수들의 재임용·승진에 활용된다. 일부 교수들은 연구·교육성과가 아닌 모금실적으로 평가를 받는 데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중앙대의 경우 교수업적평가 중 발전기금 모금액 1000만 원당 1점을 부여한다. 교수업적평가는 연구·교육·사회봉사 항목으로 구분되며 각각 100점이 만점이다. 교수들은 사회봉사 영역 100점 만점 중 최대 20점까지를 모금실적으로 채울 수 있다. 수원대는 아예 봉사영역 중 모금실적 평가항목을 따로 두고 3억 원 이상의 기부금을 유치하는 교수들에게 만점을 준다. 한국항공대와 청주대도 교수업적평가를 이용해 교수들에게 기부금 모금을 압박하고 있다.

중앙대의 한 교수는 “교수는 본래의 업무인 교육이나 연구로 평가받아야 한다”며 “재임용·승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수업적평가에 모금실적 항목을 두어 교수들에게 기부금 유치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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