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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2등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

이정훈 기자I 2014.01.22 06:01:01
[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우리는 전세계에서 2등씩이나 되는 경제 대국이다. 모두가 이를 축하하자.”

워싱턴D.C에 있는 씽크탱크 글로벌개발센터(CGD) 선임연구원 찰스 케니는 후발 경제국의 급부상을 다룬 책 ‘업사이드 오브 다운(The Upside of Down)’에서 중국 경제에 떠밀려 2등으로 내려 앉은

미국에 대해 이같이 썼다.

통계를 봐도 지난 2012년 세계 최대 상품 수출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지난해 1조9500억달러의 수입과 2조2100억달러의 수출로 4조1600억달러(약 4410조원)의 총 무역액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미국을 앞질러 세계 1등으로 올라섰다.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해도 지난 2011년 중국 GDP는 10조4000억달러를 기록해 13조3000억달러였던 미국과 격차를 크게 좁혔고 매년 7~8% 성장률을 보인 중국이 3% 미만 성장에 그친 미국을 더욱 가까이 따라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추세라면 중국이 2017년 GDP에서도 세계 1등으로 올라서게 된다.

케니 연구원의 이같은 표현은 중국의 급성장에도 여전히 세계를 이끄는 경제 대국이라는 미국 위상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중국을 거대한 위협으로 느끼는 미국인의 이중적 태도를 잘 드러냈다.

최근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거브(YouGov)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의 50% 가량이 “앞으로도 미국이 세계 1등 경제국을 지키길 원한다”고 답했다. 또 시카고 외교관계협의회(CCFR)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중국의 성장이 미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한 미국인은 9%에 불과했고 40%는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취재과정에서 직접 만난 대다수 미국인들은 이런 복잡한 속내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세계는 여전히 미국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자부심이 넘쳐날 뿐이었다.

실제 경제의 내실과 기업들 실력에서 중국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국을 따라잡기 힘들 것이다. 또 경제 외에 정치, 외교, 군사력, 문화,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미국이라는 강대국 위상을 위협할 존재는 거의 없을 것이다.

특이한 점은 사실 하나 하나 뜯어보면 미국은 그다지 볼 품없는 국가라는 점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투명성지수에서 미국은 19위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집계한 남성과 여성간 임금 격차는 세계 67위로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회원국 가운데 평균 기대수명은 27위로 낮고 영아 사망률은 29위로 높다. 실업률은 23번째로 높고 학생들의 수학 실력은 27위다. 계층간 소득 형평성은 30위로 낮다.

이처럼 지표상으로 1등 국가라고 말하기 어려운 면들을 갖고 있는 미국이지만 우리는 대개 미국을 일류국가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어느 하나 대단치 않은 단면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하나된 미국으로 이끌어내는 힘 때문이다. 지난 1980년대 이미 ‘강대국의 흥망’에서 “미국의 영화(榮華)는 끝났다”고 외친 폴 케네디의 잿빛 전망을 ‘신경제 10년 호황’으로 바꿨고 암흑같던 금융위기를 극적인 경기 회복으로 바꿔놓은 게 미국이다.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를 딛고 회복세를 타던 지난 2011년 여름 이 곳 뉴욕에 부임한 뒤 2년 반 동안의 특파원 임기를 마치며 세계를 호령하는 일류국가 미국의 저력을 새삼 절감한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며 양적인 경제 목표에만 목을 매는 나라, 1등이 아니면 안된다는 성적 지상주의가 만연한 나라, 탁월한 개개인과 기업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의 힘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나라, 그런 모국으로 복귀하면서 미국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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