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5억원까지 올랐던 대림아파트 전용면적 84㎡가 얼마 전 경매에서 6억원 선에 낙찰됐습니다. 그런데 이게 시세라고 얘기하면 주민들한테 몰매 맞죠.”(서부이촌동 G공인 관계자)
지난 3일 찾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이촌로2가길. 한강변을 따라 늘어선 아파트 단지와 절반 가량이 텅 비어있는 상가 건물 사이 거리가 황량하기만 하다. 과거 아파트 담장을 따라 흉물스럽게 내걸렸던 개발 찬·반 현수막들도 대부분 사라졌다. 최근 신기루가 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대상지인 서부이촌동은 이처럼 활력을 잃은 채 적막에 잠겨 있다.
이곳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사업 무산으로 조만간 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된다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주민들 사이에서는 빚 부담에 급매물이 풀리고 집값이 주저앉는 등 진짜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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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지 주민들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모습이다. 사업 무산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한때 사업지에 포함됐던 대림아파트 주민 조성원(60·여)씨는 “지난 7년 사이 상권이 죽고 동네가 완전히 망가졌는데 이제 와서 아무런 대안 없이 구역 해제가 되면 집값만 떨어지지 않겠냐”고 속상해했다. 인근 D공인 관계자는 “이곳 주택 상당수가 수억원대 은행 빚을 끼고 있는 깡통들”이라며 “개발 기대감이 사라져 집값 하락이 본격화하면 더이상 융자 부담을 못 이긴 깡통주택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얼어붙었던 주택 거래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거의 사라진 상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이 일대에서 실거래된 아파트는 모두 6채 뿐이다. 이주 대책 기준일 이후 집을 사면 신축 주택의 입주권을 제공받을 수 없어 찾는 사람이 없었던 때문이다. 기준일이 무의미해진 지금은 매수·매도자의 서로 다른 눈높이가 문제다. 집주인은 과거 시장 호황기 수준의 집값을 기대하지만 급매물 위주의 거래가격은 이를 크게 밑돌고 있다. 지난 8월 서부이촌동 동원베네스트 85㎡ 아파트가 6억5000만원에 팔렸다. 지난 2009년 최고 8억8000만원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4년 새 2억3000만원이나 가격이 빠진 것이다. 대림아파트 84㎡는 지난달 감정가 12억원에 경매에 부쳐져 6억144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격 비율)이 51.2%에 불과하다. 연립·다세대주택 밀집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07년 당시 3.3㎡당 2억원을 웃돌았던 지분값은 요즘 1억원에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G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대림아파트 84㎡를 6억원 대에 사겠다는 문의가 종종 있지만 집주인들은 예전 최고가격(12억~15억원)만 생각해 10억원 이상 받기를 원한다”며 “매도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가 대폭 하향 조정되지 않는 한 거래 성립 자체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집주인들이 반토막 난 집값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용산개발사업 시행사인 드림허브 조사에 따르면 서부이촌동 2300여 가구의 54%가 평균 3억5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막대한 금액의 보상을 약속받고 집과 땅을 담보로 빚을 냈다가 개발이 무산된 지금 손해만 보게 된 주민이 적지 않은 것이다. 주민 김모(64)씨는 “대출을 끼고 있는 경우 경매가 수준에 집을 팔아 빚을 갚고 나면 인근 전셋집 구할 돈도 안 남는다”고 말했다. 서부이촌동 K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제껏 고통받았던 주민들의 피해를 줄이려면 서울시가 새 개발 청사진을 내놓는 등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