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김기성특파원]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
느낌이 별로 좋지 않다. 뉴욕 주식시장이 금요일 곤두박질치면 어김없이 붙는 기사 제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매시장으로 한발짝 옮겨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국의 최대 성수기인 연말 쇼핑 시즌의 출발점인 까닭이다.
11월 네째주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의 다음날을 지칭하는 `블랙 프라이데이`는 미국의 소매업체들이 이날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연말 쇼핑시즌에서 연간 흑자로 돌아선다는 의미에서 `블랙`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의 대목이 있는 11월과 12월 두달동안의 매출이 연간 매출의 70%를 차지한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폭락(검다)`이라는 뜻에서 `블랙`의 단어가 주어진 주식시장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는 셈이다.
올해도 월마트, 타겟 등 대형 소매업체들은 예년과 같이 `블랙 프라이데이`의 파격적인 할인행사를 알리는 광고를 쏟아내고 있다.
요즘들어 매일 아침이면 신문에 끼어들어오는 광고 전단지의 분량은 조금 과장해서 신문보다 더 두툼하다. 광고 문구를 보면 40~50% 할인은 다반사다. 해당 유통업체의 카드로 구입할 때 적용되는 할인에 이것 저것 붙이면 평소의 절반 가격도 안된다.
소매업체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블랙 프라이데이`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날이 되면 주요 유통업체들의 정문 앞은 소비자들로 밤샘 장사진을 이루고, 정문이 열리면 소비자들이 100미터 달리기 하듯 매장 안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소비의 천국이 날개를 다는 날이다.
예견컨데 올해도 이런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의 `블랙 프라이데이`가 본래의 뜻을 충족시켜줄 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경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니 신용위기니 해서 이만 저만 차가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소매업체들은 경기가 별로였던 지난해보다도 더욱 파격적인 할인 구호를 내걸고 있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그 출발점은 미국의 주택경기침체에 있다.
미국의 주택은 우리나라와는 상당히 다른 경제적 의미를 갖고 있다. 주택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소비하는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주택을 ATM(현금 입출금 자동화기기)이라고 비유하면 적당할 듯 싶다.
주거용 부동산에서 파생된 자금을 의미하는 `Home Equity Withdrawal(HEW)`의 규모는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동안 연평균 8400억달러에 달했다. 주택 매각, 주택담보대출(모기지) 등을 합친 규모다. 이중 30%를 넘어서는 3100억달러는 개인 소비로 이어졌다.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지탱하고 있는 소비의 상당부분이 주거용 부동산을 기초자산으로 해서 이뤄졌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그러나 올들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심화되면서 `HEW`의 기능이 삐걱거리고 있다. 모기지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길거리에 나앉는 사례는 급증하고 있고, 바닥을 모르고 추락중인 주택가격은 주택의 자금 조달 기능을 정지시켜 버렸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과 이코노미스트인 제임스 케네디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HEW` 규모는 15% 감소했고, 여기서 파생된 소비는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문제는 여름을 기점으로 이같은 현상이 심화되면서 경기침체(recession)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 위축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비관론이 대두되는 배경이다.
달러 약세를 등에 업은 수출 호조와 고용시장의 견조함이 주택시장발 심각한 소비위축을 막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경기의 체감온도는 사실상 침체국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연말 쇼핑 시즌이 괜찮다고 해도 내년 1분기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주식시장과 소매시장에서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는 `블랙 프라이데이`가 본의 아니게 같은 뜻을 담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