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중산층 은퇴자들이 서울과 수도권 밖으로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 서울의 비싼 집값과 생활비를 부담해가며 30년 이상 노후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탓이다. 본지가 최근 5년간 서울에서 타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긴 60세 이상 은퇴자들의 이동(retirement migration) 경로를 추적한 결과, 두 가지의 큰 트렌드가 드러났다.
집 팔아 생활비 싼 곳으로
첫째는 서울 아파트를 팔고 가격이 좀더 싼 경기도 위성도시로 옮기는 행렬이다. 아파트 생활을 선호하는 은퇴자들이 이런 선택을 하고 있다. 통계청 인구이동 조사에 따르면 2001년 이후 5년 동안 약 20만명의 은퇴자들이 서울에서 경기도 위성도시로 이사를 갔다. 용인·하남·분당·일산·산본·파주 지역에서 60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저스트알(부동산컨설팅업체) 김우희 상무는 “위성도시로 가는 은퇴자들은 대부분 아파트 평수를 줄여 노후생활비를 만들려는 목적”이라며 “서울 30평 아파트를 팔아 위성도시로 이사가면 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사고도 1억~4억원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서울을 떠나 아예 지방도시나 농촌으로 향하는 행렬이다. 최근 5년 동안 약 10만9000명의 은퇴자들이 수도권 밖의 지방도시로 떠나갔다. 전국 곳곳으로 흘러갔지만 강원·대전·충북·충남 등 서울에서 150㎞ 이내에 위치한 지역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은퇴자를 끌어들였다. 서울에서 가까운 지리적 장점에다 집값이 더 싸다는 점이 수도권 은퇴자들의 마음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은퇴자 이주와 관련해 주목을 받는 곳이 최근 남한강 주변(양평·여주·부론·소태·앙성·충주)을 따라 형성되고 있는 ‘은퇴자 주거 벨트’다. 경기·충북·강원 등 3개 도의 경계(境界) 지역인 원주시 부론면의 경우, 6년 전부터 은퇴자가 몰려들기 시작해 현재 100가구가 넘는 은퇴자들이 살고 있다.
남한강 은퇴벨트 형성
부론면에서 은퇴자 주치의로 활동하는 신동일 사랑의원 원장은 “남한강변은 날씨도 좋고 생활비도 적게 먹혀 은퇴자 주거지로 안성맞춤”이라며 “다만 정부의 개발계획 남발로 최근 2년 사이 땅값이 3배 이상 올라 젊은 은퇴자들이 주거지를 새로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은퇴자들의 90%는 직장을 다니던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또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서울 중산층 은퇴자들의 지방 이주는 이런 흐름에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