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가상자산 과세가 투자수요 밖으로 내몬다…산업 육성과 ‘엇박자’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정윤영 기자I 2026.08.11 00:32:04

Google 검색에서 이데일리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당국, 가상자산 과세고시 제정 착수]③
해외·DEX 이동 쉬운데 국내 머물 세제 유인은 부족
코인 대신 DAT 주식 사면 비과세…직접투자 위축 우려
거래수수료 의존도 99%…거래 감소에 국내 거래소 직격
과세 인프라도 미비…야당, 2030년까지 유예법 발의

[이데일리 정윤영 기자] 국세청이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양도차익에 대한 세부 과세 기준을 담은 고시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현행 과세체계가 오히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투자 수요를 해외 거래소와 주식시장으로 내몰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가상자산 산업 육성과 법인시장 개방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과세가 국내 거래소의 거래 기반을 약화시키는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거래소·개인지갑 등에 대한 과세 행정 기반마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과세 유예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세종시에 위치한 국세청 본청. (사진=최훈길 기자)
세종시에 위치한 국세청 본청. (사진=최훈길 기자)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오는 10월 가상자산 과세 관련 고시 제정을 목표로 12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꾸리고 이달 24일 첫 회의를 열 계획이다. 가상자산 업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전히 과세 시행이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세청은 내년 1월1일 과세 시행을 앞두고 세부 기준 마련을 위한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업계가 우선 문제로 꼽는 것은 국내 시장에 투자자를 붙잡아둘 유인이 과세체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상자산은 국경 간 이전이 쉽고 중앙화된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도 거래할 수 있어 세 부담이 커질 경우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나 탈중앙화거래소(DEX)로 자산을 옮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로 빠져나간 거래는 국내 과세당국의 세원 포착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국내 거래소의 거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배진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세제개편을 한 일본은 금융상품거래법에 등록된 거래소에서 취급하는 특정 가상자산만 금융투자소득으로 과세하고, 해외 거래소나 탈중앙화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코인에 대해서는 세금 부담이 더 큰 소득으로 과세할 예정인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내 제도권 시장에 투자자가 머물도록 세제상 유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특히 가상자산 거래량이 이미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투자자 이탈은 국내 거래소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블록(The Block) 데이터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글로벌 가상자산 현물 거래소의 거래량은 전년동기대비 70% 이상 감소했다.

국내 거래소는 거래 수수료 의존도가 99%에 달하는 만큼 거래량 감소가 곧바로 실적 악화로 이어지는 구조다. 스테이킹과 커스터디, 스테이블코인 등으로 수익원을 다각화한 해외 대형 거래소와 달리 국내 사업자들은 규제 환경 등의 영향으로 거래 중개 이외의 사업으로 확장하는 데 제약을 받아왔다. 과세로 국내 거래 수요가 추가로 줄어들 경우 개별 거래소의 수익성뿐 아니라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거래 기반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투자 수요가 빠져나갈 수 있는 경로는 해외 거래소나 DEX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면서 상장기업의 가상자산 투자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현행 과세체계가 투자 수요를 주식시장으로 우회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다수 개인투자자의 상장주식 양도차익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반면 가상자산 양도차익에는 과세가 이뤄진다. 이에 따라 같은 가상자산 가격 상승에 투자하더라도 직접 가상자산을 보유하는 것과 가상자산을 대규모로 보유한 상장기업 주식을 사는 것 사이에 세 부담 차이가 발생한다.

세후수익률을 고려하는 투자자라면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직접 매수하는 대신 미국 스트래티지나 비트마인과 같은 ‘디지털자산 트레저리 기업(DAT)’ 주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는 셈이다. 법인시장 개방으로 이 같은 기업이 늘어날수록 직접 투자 대신 상장주식을 선택할 유인도 커질 수 있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 정책과도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법인의 시장 참여를 허용해 국내 디지털자산 생태계를 확대하는 동시에 개인의 직접 투자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세 부담을 지울 경우, 결과적으로 투자 수요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아닌 해외 거래소나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수 있어서다.

김남웅 포필러스 대표는 “같은 가상자산에 투자하더라도 투자 경로에 따라 세 부담이 달라지면 시장 참여자의 선택이 왜곡될 수 있다”며 “정부가 디지털자산 산업 육성과 법인의 시장 참여 확대를 추진하는 만큼 과세체계도 이 같은 정책 방향에 맞춰 함께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과세 체계를 뒷받침할 행정 기반이 충분히 갖춰졌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거래소를 통한 거래는 일정 부분 파악할 수 있지만 해외 거래소와 DEX, 개인지갑 간 온체인 거래, 개인 간(P2P) 거래 등은 소득과 취득가액을 정확히 확인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란 속에 과세 시행을 추가로 유예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내년 1월1일로 예정된 가상자산 과세 시행일을 2030년 1월1일로 3년 연기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실은 해외 거래소와 DEX, 개인지갑 등을 통한 거래의 소득 파악과 취득가액 산정이 쉽지 않아 정확한 과세에 한계가 있다는 점 등을 법안 발의 배경으로 들었다.

정 의원은 “가상자산 과세는 투자자를 보호할 제도와 공정한 과세 기반이 충분히 갖춰진 이후 시행돼야 한다”며 “과세를 위한 과세가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과세체계를 먼저 마련하는 것이 정부와 국회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