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표심잡기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여야가 선심성 공약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공약 경쟁은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높이는 효과도 크지만 이번에는 거대 양당이 유사한 내용의 퍼주기 약속으로 ‘묻고 더블로’식 맞불을 놓고 있어 상당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재원 조달 및 실현 가능성에 대한 검토 없이 질러대는 공약이 난무할 경우 선거 분위기가 혼탁해지는 것은 물론 정치권 신뢰에도 큰 흠집을 낼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것이 철도와 노인층 대상의 공약이다. 국민의힘이 경기 수원 등 일부 도심 철도의 지하화를 약속하자 민주당은 곧바로 서울의 지하철 2·3·4·7·8호선을 비롯해 수도권과 부산 대전 대구 호남 등의 전국 모든 도시의 지상 철도를 지하화하겠다고 맞섰다. 철도는 역대 선거의 단골 메뉴 공약이다. 그래도 이번은 차원이 다르다. 대상 지역이 넓은데다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해서다. 여야는 모두 기존 철도부지를 주거·상업용지로 개발하고 수익금으로 철도를 지하화한다고 밝혔지만 최고 80조원(민주당)에 이르는 비용이 거저 나올 리 만무다. 2013년의 서울시 용역에서도 서울 시내 지하철과 국철 지하화에만 최소 38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됐음을 감안하면 가늠조차 어려울 정도의 나랏돈이 소요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그제 경로당에 주 7일 점심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앞서 주 5일 점심 제공을 공약하자 이를 더 늘린 것이다. 국민의힘은 또 간병비 급여화 공약을 통해 내년부터 간병비용을 연말정산에서 세액공제해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역시 작년 11월 총선 1호 공약을 통해 간병비의 건강보험 급여화를 약속한 바 있어 두 당의 실버 선심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공약 경쟁이 퍼주기로만 흘러서는 안 된다. 공약 실천에는 반드시 국민 세금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나랏빚이 1100조원을 넘은 지금 마구 쏟아지는 초대형 개발 사업과 달콤한 복지 약속도 세금 없이는 빈말일 뿐이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정치권이 선심성 공약만 앞세운다면 이는 국가 재정을 흔들고 미래 세대에 빚더미를 떠넘기는 것과 뭣이 다른가. 유권자들도 눈을 부릅뜨고 포퓰리즘 공세를 단호히 뿌리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