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중간저장과 최종처분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지연되고 있다. 국회에 여야가 발의한 특별법안 3건이 계류 중이나 첫 발의 후 2년 넘게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중위)에 묶여 있다. 산중위는 그간 10여 차례 법안을 심의했으나 여야간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과정을 거듭해왔다. 어제 산중위가 다시 법안 심의에 나섰으나 평행선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법 제정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야간 이견이 없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장 규모를 놓고 여당은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 부응하는 수준을 주장하는 반면에 야당은 기존 원전 설계수명까지만 요구되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맞서왔다. 정부와 여당은 기존 원전 연장 운영과 신규 원전 건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야당은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중간저장 시설 확보 시점 명시 여부가 쟁점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최종처분 시설 확보 시점뿐 아니라 중간저장 시설 확보 시점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야당은 최종처분 시설 확보 시점만 명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부지 내 중간저장 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하는 사정이 바탕에 깔린 논란이다.
하지만 이런 쟁점들에 계속 발목이 잡혀 있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우리나라는 1978년 부산 고리원전 가동 이후 24기의 원전을 건설해 가동 중인데 여기에서 지금까지 1만8600t의 사용후 핵연료 등 방사성 폐기물이 나와 쌓여있다. 원전별로 방폐물을 보관하는 임시 저장시설은 불과 7년 뒤인 2030년부터 차례로 포화 상태에 들어간다. 이에 비해 최종처분 시설을 짓는 데는 부지 선정에 필요한 기간을 포함해 30년 이상 걸린다. 중간저장 시설 확충과 동시에 최종처분 시설 건설을 서두르지 않으면 앞으로 방폐장 부족으로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주요 원전 보유국 중 스페인과 한국만이 관련 법안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특별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심의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5월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법안이 자동 폐기되지 않도록 여야가 이번 회기에 절충점을 찾아서라도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