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등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 2조 5754억원어치를 매각하기 위해 최근 하나은행과 신탁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목적은 상속세 납부용이다. 이건희 회장이 2020년 10월 별세한 후 총 12조원의 상속세가 부과되자 유족들은 대출과 주식 매각 등을 통해 2021년 4월부터 5년에 걸쳐 세금을 분납하고 있다. 주식이 팔리면 삼성전자 등 핵심 기업의 유족 지분율은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정구용 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국내 상속세가 너무 가혹해 유능한 기업을 해외로 내모는 사례를 생생하게 들려줬다.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한 기업인이 회복한 뒤 상속세 상담을 받아보니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이민을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최대 주주 할증 적용시 최고 60%)에 달하는 한국의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의 정신과 책임을 지킬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정 회장은 일각에서 경영권 상속을 ‘부의 대물림’이라고 비판하지만 기업인들은 ‘책임의 대물림’으로 본다고 말했다.
상속세제의 수정·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제단체와 대기업들은 물론 중소, 중견 기업과 스타트업들로부터도 가업 승계를 통한 기업의 지속적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인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있어 왔다. 한두번 상속세를 내고 나면 회사가 나라 것이 되고 말 판에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고취시킬 수 있느냐는 탄식이다. 수조원의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고 김정주 넥슨그룹 창업자의 유족이 지주회사(NXC)의 비상장주식으로 현물 납세하자 기획재정부가 넥슨의 2대 주주가 된 사례가 얼마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속세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기재부는 응능부담 원칙 등을 감안해 과세체계를 합리화하겠다지만 성과는 감감무소식이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38개 회원국 중 사실상 1위인데다 평균(14.5%)을 3배 이상 웃도는 징벌적 상속세가 경영권 방어와 주식 가치 제고에 역행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거나 없애는 세계적 추세와도 어긋난다. 멀쩡한 기업이 해외로 나가고 세금 때문에 경영권을 정부에 넘기는 일이 계속되는 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