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맹탕 국정감사’를 뒤로하고 이번 주부터 예산안 심사에 들어간다. 오늘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이어 다음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공청회 이후 각 상임위별로 소관부처 예산안을 심사한다. 전망은 밝지 않다. 민주당은 정부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강공 드라이브를 예고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원안사수로 맞서며 격돌이 예상된다. 더욱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 여야 갈등이 극에 달할 것으로 보여 법정 시한은 물론 12월 9일 정기국회 내 예산안 통과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656조 9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2.8% 늘어나는데 그쳐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긴축이다. 반면 총수입은 총지출보다 45조원가량 부족한 612조1000억원 규모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도 재정이 빡빡하다. 그만큼 불요불급한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적재적소에 나랏돈을 아껴써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예산전쟁을 공언하며 퍼주기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요구한데 이어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안도 6% 이상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연 10조원 이상 재원이 필요한 기초연금법, 매년 1조원 넘게 소요될 양곡관리법, 대학생 무이자 대출법 등 포퓰리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민생으로 포장한 이런 퍼주기 정책은 총선을 앞두고 매표행위와 다를 바 없다. 예산안은 제로섬 게임인 만큼 이런 불필요한 곳에 지출을 늘리면 긴요한 곳에서 줄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무절제한 지출로 재정건전성을 크게 훼손한 민주당이 야당이 돼서도 나라 살림이야 어떻든 세금 잔치에 몰두하는 행보는 염치없는 일이다.
대내외 복합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1%대 저성장에 허덕일 공산이 크다. 국민 생활은 장기간의 고금리·고물가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재정이 탄탄한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 꼭 필요한 곳에 재정이 투입될 수 있도록 여야 정치권이 힘을 모을 일이다. 당리당략에 급급해 밀실에서 흥정과 담합으로 예산안을 누더기로 만들거나, 나라 살림을 흥청망청 선심의 대상으로 삼는 구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