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이란 사업주가 일한 대가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기에 근로기준법 등에 강력한 규제와 다양한 지원제도를 두고 있다.
체불 노동자에게는 임금채권 최우선변제제도, 도급사업의 직상수급인 연대책임, 임금채권보장기금의 대지급금 지급, 소송 무료지원, 생계비 융자 등을 지원한다. 체불 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 명단공개 및 신용제재, 20%의 지연이자 등으로 제재하는 한편, 체불임금 융자도 해주고 있다.
이러한 이중삼중 장치에도 불구하고 매년 엄청난 규모의 임금체불이 발생한다.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사건만 해도 2018년부터 5년간 연평균 1조5000억원이 체불됐고, 올 상반기는 823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7%나 증가했다.
도대체 이처럼 천문학적인 임금이 체불되고,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용노동부가 분류하는 체불 사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021년 체불액 1조3504억원(사업장 9만4385개소, 노동자 24만7005명) 중 도산·폐업이나 일시적 경영악화로 인한 것이 82.7%(6만542개소, 18만1053명), 법 해석·사실관계·감정 다툼으로 인한 것은 14.9%(4만1178개소, 6만3819명)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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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도 처음에는 형벌을 두려워하지만, 대부분 임금체불액보다 훨씬 적은 소액의 벌금으로 끝나다 보니 속된 말로 몸으로 때우는 게 남는 장사임을 학습하게 된다. 지난 18일 고용노동부 목포지청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형 집행유예 중에 건설 일용노동자 22명의 임금 4000여만원을 체불한 전기업자 A씨를 구속했다. A씨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임금체불로만 26번이나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고 한다. 형벌 위주 대처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체불 발생 자체를 예방하고, 노동자 권리구제 중심으로 제도와 행정을 전환해야 한다. 특별사법경찰관이 채권추심원처럼 체불임금을 받아주는 행정은 그만둬야 한다. 사업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제재는 임금을 체불하지 않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게 만들고, 고의·상습적으로 체불하면 아예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재하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체불 사업주는 정부지원사업에서 배제하고, 대출심사 때 신용제재 강화를 추진하는 것은 처벌만 외치던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접근이다. 다만, 징벌 효과가 약한 벌금보다는 과징금과 같은 보다 직접적인 경제적 제재를 도입해야 한다. 동시에 일시적 경영악화로 인한 체불에 대해선 임금채권보장기금의 대지급금 지원이나 사업주 융자를 강화하는 적극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1만원 체불과 1억원 체불에 똑같은 사건처리 절차를 적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행정력 낭비다. 체불 제도를 혁신해야 근로감독관이 체불 사건에 매몰되지 않고 본연의 근로감독 업무에 충실할 수 있다. 형벌은 상습·악덕 체불과 일정 규모 이상으로 한정하고, 소액사건은 행정구제를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당해고 처벌을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제도로 바꿀 때도 논란이 많았지만, 복직과 금전보상으로 권리구제가 개선됐다. 임금체불도 노동위원회 조정·심판을 통해 신속하고 실질적인 권리구제가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법원도 양형 기준을 강화해 솜방망이 처벌이 되지 않도록 하고, 노사정은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합리적인 해법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임금체불 해결 없이 공정과 상식을 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