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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성장률 1.1% ‘예상 하회’
27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속보치는 1.1%(전기 대비 연율 기준)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다우존스는 각각 2.0%를 전망했는데, 이를 큰 폭 밑돌았다. 지난해 4분기(2.6%) 이후 한 분기 만에 성장세가 급격하게 식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경제 예상 모델인 ‘GDP 나우’와 비교해 봐도, 1분기 성장률은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나온다. GDP 나우는 그동안 1분기 성장률은 2~3%대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에는 3.5%까지 높였고,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20일에는 2.4%로 제시했다.
미국 성장세가 둔화한 것은 민간 투자가 줄어든 탓이다. 1분기 민간 총투자는 무려 12.5% 급감했다. 민간 기업과 부동산 부문 투자 등이 감소했다는 뜻이다. 연준이 지난 1년여간 기준금리를 475bp(1bp=0.01%포인트) 인상하는 역대급 긴축을 편 여파로 읽힌다. 그나마 소비지출과 수출이 각각 3.7%, 4.8% 증가하면서 성장을 견인했다. 소비는 미국 경제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버팀목이다.
문제는 추후 성장세는 더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연준 통화정책은 통상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만큼 누적된 긴축이 실물경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최근 소비 지표는 예상을 밑도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LPL 파이낸셜의 제프리 로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들이 올해 1월 이후에는 소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진적인 성격의 이번 GDP 보고서는 (소비가 나쁘지 않다는 식으로) 시장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소비자들이 미래를 점점 더 비관적으로 보면서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 경제는 변곡점에 서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중소 지역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둘러싼 위기설이 계속 나오는 등 은행권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변수다. 은행 신용 경색과 대출 감소 경로를 통해 경기 침체를 초래할 수 있는 탓이다.
이 와중에 1분기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4.2% 상승하면서 전기 수준(3.7%)을 웃돌았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는 이보다 높은 4.9%로 나타났다. 이는 연준 통화정책 목표치(2.0%)를 한참 상회하는 수치다. 경기 하강은 본격화할 조짐인데, 인플레이션을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이날 오후 현재 연준이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금리를 25bp 올릴 확률을 87.4%로 보고 있다. 전날 72.2%에서 더 높아졌다. 6월 FOMC 때 추가로 25bp 더 인상해 5.25~5.50%에 이를 것이라는 베팅 역시 13.7%에서 24.8%로 높아졌다. 뉴욕채권시장에서 연준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장중 4.111%까지 치솟았다. 19bp 가까이 뛴 수준이다. 시장은 경기 하강을 아랑곳 않고 긴축 지속에 기울어 있는 것이다.
◇일각서 ‘연준 실기’ 스태그 공포
게다가 미국 고용시장 과열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3만건으로 전주 대비 1만6000건 줄었다. 강한 노동시장은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꼽힌다. 쿠나 뮤추얼그룹의 스티브 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산업 전반에 걸친 대량 해고에도 향후 2년간 실업률은 4.5%를 밑돌 것”이라며 “연준이 금리를 계속 인상할 여지를 줄 것”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자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조금씩 부상하고 있다. CNBC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느린 성장세는 1970~1980년대 미국 경제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묘사할 수 있다”고 전했다.
퀼터 인베스터스의 마커스 브룩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연착륙은 점점 달성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제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테온 매크로 이코노믹스의 이언 셰퍼드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는 2분기와 3분기로 갈수록 완전히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며 “침체로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월가 일각에서는 연준 실기론이 적지 않다. 미국 경제가 위축 국면으로 들어섰음에도 금리 인하보다 인상 여론이 많다는 자체가 정책 실패라는 것이다. 월가 주요 뮤추얼펀드의 한 매니저는 “1분기 성장률을 2~3%대로 점쳤는데, 1.1%까지 떨어졌다는 점이 놀랍다”며 “2분기 이후 소비는 더 눈에 띄게 둔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 통화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며 “시장 전반의 분위기가 그런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GDP 보고서와 관련해 “미국 경제가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전반적인 성장 속도가 둔화했음에도 1분기 미국 소비자들은 지출을 계속했다”며 “나의 미국 투자 어젠다는 중산층은 두텁게 하고 어려운 사람은 끌어올리는 경제를 재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