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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지켜져야 할 부모-자녀 간의 실존적 질서가 무너질 때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병들어간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인 가정을 예로 들어보자. 아버지가 술에 만취해 귀가해 한바탕 주사를 부리고 곯아떨어지시면 어머니는 절망 속에 한탄하며 흐느껴 우신다. 겁에 질렸던 아이는 자신의 두려움을 뒤로한 채 엄마를 달래며 위로한다. 다음날 살벌한 분위기에 아이들은 부모의 눈치를 보며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한다.
한참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느끼고 충족시키면서 정체성을 형성해야 할 어린 시절, 부모의 눈치를 보며 부모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정작 아이는 자신이 화가 나거나 슬플 때조차 위로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점점 정서적으로 고갈된다. 이처럼 돌봄을 받아야 할 아이가 오히려 부모를 돌보는 현상을 ‘부모화(parentification)’ 라고 말한다. 아이가 부모의 역할을 하는 부모화 현상이 반복되면 자녀의 심리적 장애로 이어진다.
우선 아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가 어렵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상황이 편하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이 욕구를 느낀다는 사실이 불편해지면서 우울과 지기 비난에 과도한 수치심과 죄의식에 시달린다. 그 결과 자신의 감정과 욕구는 부정하면서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한다. 그러한 돌봄 가운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채워지지 않은 결핍은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내어 늘 정서적 허기를 느끼게 만든다.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정서적 보호와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람은 성인이 되어 그 결핍을 가까운 누군가로부터 보상받으려 한다. 그 대상은 부모_자녀 관계와 가장 유사한 친밀감을 지닌 배우자가 되곤 하지만, ‘서로 주고받는’ 관계 맥락을 지닌 부부관계에서는 한계가 있다. 또한 사랑이 식는 순간 일방적인 돌봄도 시들해지는 탓이다. 배우자로 채워지지 않을 경우, 자기 부모처럼 자녀를 통해 정서적 허기를 채우려 한다. 똑같은 ‘부모화’ 현상이 세대를 통해 전수되며 반복된다.
혹시 당신은 어린 시절, 유난히 화가 많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거나, 나약한 어머니를 지나치게 걱정하고 보살핀 경험은 없는가? 부모의 감정이 나의 감정보다 소중하고 앞선다고 여기며 자라지는 않았는가?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적이 없는가?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
만약 있다면 자신이 겪은 ‘부모화’를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대물림하지 않도록 돌아보고 결단해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올라오는 정서적 결핍에 대한 욕망을 한 발짝 떨어져 조망하고 그 부정적인 결과를 예견하고 돌이켜야 한다. 부모는 절대 자녀의 충성심을 이용하여 정서적으로 악용하고 착취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 ‘부모화’가 아닌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실존적 질서가 유지될 때, 우리 자녀가 건강한 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