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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인 1639만4815표(48.56%) vs 이재명 후보 1614만7738표(47.83%). 개표 내내 피말리는 접전이었다. 결과는 종이 한 장이었다. 24만7077표(0.73%포인트) 차이였다. 87년 대선 이후 1·2위 후보간 최소 격차였다. 박빙대선이었던 97년 대선(김대중 40.27% vs 이회창 38.74%)과 2002년 대선(노무현 48.91% vs 이회창 46.58%)보다 더 치열했던 대혼전이었다.
3월 10일 새벽 성남시 분당구 자택에서 대기 중이던 이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차량편으로 서울로 이동해 민주당사에 도착했다. 마이크를 잡은 이 후보는 대선 패배를 시인하고 결과에 승복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윤석열 후보님께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이날 오후 선대위 해단식에서도 “이재명이 부족해서 패배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후보는 기나긴 자숙모드에 접어들었다.
민주당은 거대한 침묵에 빠졌다. 쇄신·혁신을 위한 질서있는 수습도 난항이다. 패배 원인 찾기와 책임론이 한창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3주 만에 실시되는 6.1 지방선거도 걱정이다. 대선 민심이 이어지면 민주당이 장악해온 지방권력 대부분을 잃는다. 압도적인 의회권력의 우위도 불안 요소다. ‘172석 무기’를 앞세운 과도한 견제는 ‘국정 발목잡기’라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이재명은 왜 졌을까?” 해석은 엇갈린다. ‘졌잘싸’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권교체 여론이 과반인 상황에서 선전했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실패와 내로남불 이미지는 불가항력이었다는 인식이다. 이에 “꿈보다 해몽”이라는 직설 비판도 나온다. 대장동 의혹 해소 실패는 물론 ‘소탐대실’로 불린 법카 리스크가 결정타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후보 책임이 더 크다는 논리다.
대선 패장의 길은 보통 ‘재도전’이다. ‘재수·삼수’라는 와신상담을 선택한다. YS와 DJ가 대표적이다. 87년 대선 패배 이후 3당합당·정계은퇴 번복 등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제14대·15대 대통령에 차례로 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 입성 전에 경선패배와 대선패배의 아픔을 겪었다. 반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97년·2002년·2007년 세 차례나 도전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번 대선의 조연이었던 ‘안철수·심상정·홍준표·유승민’ 4인방도 지난 대선의 패장이었다.
과연 이 후보의 선택은 무엇일까? 언제일지 몰라도 정치재개 관측이 압도적이다. 여권에는 마땅한 정치적 구심점조차 없다. 지방선거 전망도 극히 불투명하다. 남은 건 이 후보가 언제, 어떤 명분으로 복귀하느냐다.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6월 지방선거 역할론 △8월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 △2024년 22대 총선 출마. 최종 골인 지점은 역시 2027년 21대 대선이다. 물론 난제도 있다. 피바람이 불지라도 대장동 숙제를 풀어야 한다. 법카 리스크도 마찬가지다.
다시 대선 득표수다. 이 후보의 정치재개는 1614만여표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 vs 반밖에 남지 않았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김대중(1032만여표)·노무현(1201만여표) 전 대통령과 문재인(1342만여표) 대통령보다 훨씬 많다. 민주당 후보로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 후보는 대선 유세에서 “정치를 끝내기에는 아직 젊다”고 언급한 바 있다. 스스로 대권 재도전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이 후보는 1964년생으로 우리 나이 58세다. 참고로 1924년생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만74세, 1946년생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만 56세, 1953년생인 문재인 대통령은 만 64세에 대통령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