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MZ세대, 절망과 희망 사이

양지윤 기자I 2021.09.10 06:05:00
박준희 서울 관악구청장.


[박준희 관악구청장]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10여 년 전쯤의 빅뉴스가 있다. 이민 2세가 아닌 21살의 모델 강승현이 세계슈퍼모델대회에서 1위에 오르며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봤던 그녀의 당당한 자세와 자신감 뿜는 강렬한 눈빛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김연아, 박지성, 싸이, 손흥민 등 걸출한 청년 세계 스타들이 줄을 이었고 마침내 방탄소년단(BTS)이 세계 한류 역사의 페이지를 넘기는 정점을 찍고 있다.

최근 들어 소위 MZ세대, 2030 청년들의 물결이 거세다. 물줄기는 두 갈래인데 그들의 희망과 비전을 이끌어주지 못하는 시대와의 불화가 한 줄기고, 동전의 양면처럼 불화를 이겨내려는 치열한 분투가 4차 산업혁명이 부르는 변화무쌍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K-콘텐츠를 역동하는 긍정의 물결이 다른 한 줄기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MZ세대가 많기로 소문난 관악구인 만큼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책상 위에는 ‘K-를 생각한다’, ‘포노사피엔스’ 등 청년 현실을 분석한 책들이 쌓여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차단에 대처하느라 눈코 뜰새 없던 지난해 어느 날 젊은 아들이 보내준 유튜브 동영상을 보게 됐다. ‘범 내려온다’는 뮤직비디오였는데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아 중독성이 생길 정도였다. 청년들은 랩, 재즈, 락 같은 비트 강한 서구 음악에만 익숙한 줄 알았는데 군밤타령 같은 우리 가락에 춤을 곁들인 비디오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다 바로 엊그제는 SNS(페이스북)에서 ‘서산 머드맥스’라는 동영상에 감탄이 터졌다. 한국관광공사가 국제 홍보를 위해 만든 동영상이라고 하는데 ‘매드맥스(Mad Max) : 분노의 도로’라는 영화를 패러디해 한국 민요 ‘옹헤야’라는 배경음악과 함께 동네 주민들의 경운기 부대가 바지락을 캐러 가는 스토리를 영상화한 것이었다. 외국 관광객들에 생소한 시골 서산을 민요와 경운기라는 소재에 기발한 독창성과 창의성을 발휘한 것이다. 요즘 청년 말대로 정말 힙하다.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과 ‘삼포세대-취업, 결혼, 출산 포기’로 대변되는 청년들의 현실적 고통을 해소하려면 ‘일자리(취업), 잠 자리(주거), 놀 자리(삶의 질)’를 위한 강력한 청년지원 정책이 실행돼야 한다. 그러나 중앙정부에 비해 재원과 권한이 턱없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를 만족시키는 정책을 수행하기란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기 위해 서두르게 됐던 정책이 ‘청년 네트워크 구축’ ‘청년청 건설’ ‘관천로 문화플랫폼 조성’ ‘별빛내린천 경관 정비’ ‘관악문화재단 설립’ 등이다. K-콘텐츠를 주도할 창의력과 끼를 마음껏 키우고 발산할 수 있도록 인적 네트워크와 플랫폼 공간이라도 제대로 마련해주자는 취지였다.

가로등이 없어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처럼 불투명한 미래를 앞에 두고 젊음의 패기로만 무작정 걷는 길이 불안할 것은 당연하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막다른 길은 없다. 꽉 막힌 것 같은 상황에서도 문 하나는 꼭 보이게 마련이다. ‘항구에 정박한 배는 안전하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는 말은 경험상 청년들에게 가장 유효하다. 관악구의 청년 정책이 내일을 향한 힘찬 날갯짓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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