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여름에 없어선 안 될 전자제품’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도 ‘에어컨’일 겁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에어컨보다도 인류 생존 환경을 혁명적으로 바꾼 전자제품이 있습니다. 에어컨이나 TV는 당장 사라져도 살아갈 수야 있겠지만, 이것이 없어진다면 아마 전 세계는 분명 아비규환에 빠지게 될 겁니다. ‘백색 가전’에서 이제는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고 화려한 변신을 한 ‘냉장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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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는 인간 생활의 삼대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중 ‘식’, 즉 먹을 거리를 담당하는 아주 중요한 가전제품 중 하나입니다. 음식을 신선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영양 섭취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됐고 식재료 공급 노력도 훨씬 덜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식중독과 같은 질병까지 해결하며 사망률을 낮추는 데도 크게 기여했죠.
인간에게 냉장고가 얼마나 중요한 가전인지는 통계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진행한 주방·생활 가전 보유율 조사 결과에 따르면, 냉장고의 보유율은 99%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우스갯 소리로 쌀밥에 김치만 있어도 먹고 산다는 한국인에게 전기밥솥(98%)보다도 필수적인 가전인 셈이죠.
물론 오랜 옛날부터 ‘냉기’를 보관하려는 시도는 있었습니다. 얼음을 확보·저장하려 했던 건데요, 지금처럼 인공적으로 얼음을 만들어낼 수 없었기에 겨우내 언 강을 잘라내 땅을 파 만든 석·목재 창고에 보관해야 했습니다. 희소했던 탓에 주로 왕실 몫이었죠. 우리나라에선 신라 시대의 석빙고, 조선시대의 ‘서빙고’나 ‘동빙고’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반포대교 북단과 인접한 용산 지역에는 서빙고·동빙고동이라는 행정구역명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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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8세기로 접어들면서 냉장기술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1748년 영국의 윌리엄 컬런이 대학에서 알코올의 일종인 에틸에테르를 반(半) 진공상태에서 기화시켜 얼음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1834년엔 미국의 제이콥 퍼킨스가 지금의 냉장고의 제작원리가 된 ‘공기 냉동 압축기(얼음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기계)’를 발명하는 데 이릅니다. 마침내 1862년 냉장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스코틀랜드 출신 인쇄공 제임스 해리슨이 에테르를 냉매로 사용해 공기압축기를 장착한 냉장고를 선보였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산업용 냉장고였습니다.
가정용 냉장고는 1910년대 미국에서 등장했습니다. 1911년 미국 제네럴일렉트릭(GE)이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를 개발했으며, 1915년 미국 엔지니어인 알프레도 멜로우즈는 100% 수작업으로 만든 가정용 냉장고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 뒤인 1918년 멜로우즈의 기술력을 높이 산 GE가 멜로우즈의 회사를 인수한 이후 ‘가정용 소형 냉장고’의 대량 생산이 시작됩니다. 냉장고가 필수 가전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계기였죠. 이후 1920~30년대를 거치며 프레온 가스를 냉매로 활용하고 소형 압축기가 개발되면서 마침내 오늘날의 ‘사각형 캐비닛’형 냉장고가 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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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냉장고 역사는 어떨까요? 국내 최초 냉장고는 금성사(현 LG전자)가 1965년 4월 생산한 ‘눈표냉장고(GR-120)’입니다. 냉장실과 냉동실이 일체형으로 구성돼 있고 저장용량은 120L인 이 제품은 문화재청이 국가등록문화재로도 지정했습니다. 문화재청은 “우리나라 최초로 상용화된 가정용 식품보관 냉장고”라며 “이를 통해 축적된 기술은 후에 실내용 에어컨, 대형 건물의 냉·온방 컨트롤, 대형 냉장시설 등에 응용되는 등 냉장산업의 기술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산업디자인의 역사적 측면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라고 설명합니다.
이후 가정용 냉장고는 소음·냉각·전력 절감 기술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킨 것은 물론, 외형적인 면에서도 용량이 1000L에 달할 만큼 거대해졌습니다. 하나뿐이던 문짝도 두 개는 물론 네 개까지 늘어나는 등 수납 활용성도 크게 향상됐죠. 현재 가장 흔한 형태의 냉장고인 양문형 냉장고의 경우 금성사가 1976년 국내 최초로 선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별도 마련된 조그마한 문을 통해 물이나 음료 등을 꺼낼 수 있는 ‘홈바’, 정수기, 디스플레이 등이 탑재됐고 식자재 관리를 비롯한 인공지능 기능까지 갖추게 됩니다.
◇디자인을 내맘대로…삼성, 맞춤형 가전 시대를 열다
이처럼 크기와 형태, 성능에서 큰 발전을 이룬 냉장고 제조업체들은 ‘색깔’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기존에 냉장고는 백색가전의 대표주자였습니다. 백색가전은 GE가 냉장고·세탁기·에어컨·전자레인지 등은 백색으로 통일(백색가전)하고 오디오나 TV 등의 제품은 갈색(갈색가전)으로 통일하면서 탄생한 용어입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을 거쳐 2010년대로 들어서며 세련되고 시크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메탈’ 색상 인기가 급속히 확대되기 시작하는데요, 2019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지펠이라는 냉장고 브랜드를 전개하던 삼성전자(005930)의 맞춤형 가전 브랜드인 ‘비스포크(BESPOKE)’가 등장한 것이죠.
비스포크의 등장으로 소비자 취향에 따라 문짝 숫자와 문짝마다의 색깔·소재를 정할 수 있는 ‘맞춤형 냉장고’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올해 출시된 ‘비스포크 냉장고’ 신모델은 22가지 종류의 패널을 기본으로 제공하는 것은 물론, 무려 360가지 색상으로 구성된 ‘프리즘 컬러’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색상을 조합해 주문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삼성 국내 냉장고 매출에서 비스포크 비중은 65%에 달할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냉장고에 그치지 않고 정수기·세탁기·에어컨·에어드레서 등 다른 가전제품으로도 비스포크 콘셉트를 확장했습니다.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사장)은 올해 국내 가전 매출에서 비스포크 비중을 80%까지 늘리겠다고 밝히기까지 했죠.
LG전자도 이러한 맞춤형 콘셉트를 냉장고에 도입하면서 최근 냉장고 시장에선 그야말로 ‘맞춤형 대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LG전자는 ‘오브제 컬렉션’이라는 브랜드를 도입, 냉장고를 비롯한 다양한 가전제품에서 재질·색상 등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혔습니다. 오브제 컬렉션 또한 올해 2월 LG 생활가전 구매 소비자 중 2명 중 1명 구매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