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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기요금은 전력공급에 소요되는 비용을 전기요금을 통해 회수하는 총괄원가 기반으로 산정하지만 그간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전기요금이 자연독점의 성격을 지닌 다른 공공산업처럼 규제당국의 입장이 커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15일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전의 원가 회수율을 분석한 결과 2013년까지 100%를 밑돌았다. 전기를 팔아도 원가도 건지지 못한다는 얘기다. 2014~2016년 국제유가 급락 영향으로 100%을 소폭 넘겼다
원가는 국제유가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실제 국제유가 변동에 따라 원가회수율은 물론 한전 영업이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원가회수율이 77.7%까지 떨어진 2008년에는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배럴당 94.3달러를 기록했다. 같은해 한전의 영업손실은 2조7000억원대까지 확대됐다. 국제유가가 41.3달러까지 내린 2016년에는 12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69.3달러로 오른 지난해에는 다시 2000억원대 적자를 냈다.
연료비 변동이 전기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탓에 사업자 입장에서는 적기에 투자를 하지 못해 결국 전력 수급에도 영향을 주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가격 변동을 체감하지 못하는 수요자들의 전기 과소비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있다.
한전경영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에너지 효율을 나타내는 에너지원단위(1000달러당 1TOE(석유환산톤))는 0.15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33번째로 낮다. 우리나라와 에너지 수급환경이 비슷한 일본(0.089)보다 1.8배 높은 수준이다.
전기 원자재값이 요금에 반영되는 수준이 크지 않아 구입단가와 소매 판매단가가 디커플링(비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보고서는 미국 등 해외 선진국이 시행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체계를 갖고 있는 국내 특성에서 산업용에 혜택이 큰 계절별 시간대별 차등요금제(계시별 요금제)의 개선도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를 전기사용량이 적은 ‘경부하’ 시간대로 지정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전기요금을 부과하고 있다. 전기 사용량이 적은 시간에 할인을 적용해 수요를 분산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제조업 중심의 국내 산업 구조다. 한국에너지공단 조사를 보면 2016년 기준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제조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53.8%다. 이는 미국(24.5%), 일본(39.1%), 영국(23.2%)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에너지연 따르면 2017년 기준 계약전력 300kW 이상의 전력 다소비 기업인 ‘산업용(을)’ 대상 전력 판매금액은 약 27조7000억원으로 전체 49.9%를 차지했다. 산업용(을)의 시간대별 사용 비중은 경부하가 약 50%인데 이 시간대 시간당 전력요금은 kW당 53.7~61.6원으로 기본요금(6590~9810원)의 1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다. 가격이 낮은 경부하 시간대 전력 사용이 늘면서 요금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정연제 에너지연 연구원은 “산업용 전기요금의 과소비 우려는 꾸준하지만 정부가 제조업 경쟁력 지원과 물가안정 등 이유로 인상을 억제해 2013년 11월 이후 요금 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경부하 시간대 요금은 너무 낮고 최대부하 시간대 요금은 너무 높은 현재 산업용 요금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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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도 합리적인 요금 체계로 개편을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달 1일에는 내년 상반기까지 전기요금 체계 개편 방안을 마련해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공시했다. 지난 14일 2분기 실적 발표 후에도 지속가능한 전기요금 체계를 준비해 정부와 협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기요금 결정권은 사실상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 한전이 이사회를 통해 안건을 의결해도 전기위원회 심의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아직까지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에 대해 협의한 바가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한전 공시와 관련해 전기요금 체계개편 방안을 내년 상반기 중 마련해 인가를 신청하면 법령과 절차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전기요금 개편안 시한을 최소 내년 상반기로 못 박은 것은 총선이 열리는 시점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기요금 인상론이 불거질 경우 표심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전기요금이 ‘표퓰리즘’에 휩쓸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정확한 원가와 책정 내역을 인지토록 해 소비자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전기를 많이 쓸수록 이산화탄소 발생 등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비에 맞게 요금을 부과하는 수요 관리 정책은 필요하다”며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원가 공개와 홍보로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