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세종대왕의 화재특별대책

김보경 기자I 2019.05.17 05:05:00
[신열우 소방청 차장] 조선 세종 8년이던 1426년 음력 2월 15일, 지금의 서울인 한성부는 한마디로 불바다였다. 이날 장룡이라는 노비의 집에서 점심 때 시작된 불은 강한 서북풍을 타고 급격하게 확산되어 민가 2170호가 불에 탄 것을 비롯해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만 32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민가 200여 호가 불타는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이때 강원도에서 강무(講武) 중이던 세
신열우 소방청 차장
종은 보고를 받고 급히 환궁하였다. 정말 사실인가 싶을 정도지만 조선시대에 가장 컸던 대형화재는 바로 세종대왕 시절에 발생했다.

조선 조정은 그야말로 초비상 상황이었을 것이다. 연속해서 발생하는 화재를 막기 위한 특별대책이 절실했음은 자명하다. 당시는 기계식 소방장비 하나 없는 원시적인 상황이었으니 세종이 겪어야 했을 답답함과 고민의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세종은 놀라울 정도로 과감했다. 화재진압은 물론 위험요인의 단속과 제도의 집행을 위한 상설기관을 신설한 것은 대형화재를 겪은 지 불과 10일만이었다. 오늘날의 소방청에 해당하는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한 것이다. 화재안전을 혁신하려는 세종의 의지는 금화도감이 가졌던 막강한 권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방계획 없이 무질서한 건축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화재안전도를 높이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하고 금화도감에 막강한 권한과 책무를 부여하였다. 소방도로를 개설하는 것은 물론 연소 확대를 막기 위해서라면 민가를 철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소방시설과 장비를 보강하고 방화와 실화자를 찾아내 처벌했으며 소방대책 추진에 소홀한 관리는 엄하게 다스렸다. 그렇지만 아무리 실화(失火)의 죄가 있더라고 노약자나 환자, 임산부 등에게는 죄를 묻지 말도록 했다. 세종은 백성의 평안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었지만 진정 무엇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인지를 고민한 성군이었다.

지난 4월 30일 행정안전부를 비롯해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그리고 소방청이 공동으로 제천과 밀양화재와 같은 참사의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작년 2월부터 운영한 범정부 화재안전특별대책 TF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것은 화재안전과 관련된 모든 기관이 참여해 수립한 3개 분야 227개 과제로 양과 질 모두 역사상 최대의 대책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55만여 동의 건축물 데이터베이스 구축, 가연성 외장재 사용 금지 범위 강화, 전층 방화구획 의무화, 건축물관리법 제정, 화재안전성능 보강 예산지원, 전기설비 안전등급제 도입 등 그동안 소방중심의 안전대책을 넘어 건축과 전기를 포함한 종합대책이다. 그리고 안전기준을 합리화하고 실효성을 거둘 수 있게 예산도 지원한다.

고시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및 예산지원, 의료기관과 전통시장 화재알림 시스템 보강, 석유저장탱크 정기검사 강화, 통신구 소방시설 설치 의무화 등 소방대책도 수립했다. 그리고 전국 단위의 119통합정보시스템 구축, 국가적 총력대응시스템 강화, 화재대응에 관한 법률 제정 및 첨단 소방장비 도입 등 대응역량도 대폭 강화한다. ‘불나면 대피 먼저!’ 대국민 홍보, 훈련체험시설 확충과 같은 안전문화 기반의 대책도 함께 추진한다.

최근 들어 대형화재가 줄고 인명피해도 많이 감소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는 것이 바로 안전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화재로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600여 년 전 세종대왕도 오늘의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고 어렵더라도 근원적 차원의 대책을 강구했었음을 오는 7월 소방청 개청 2주년을 앞두고 깊이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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