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원(사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1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한국은 격화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를 절대 얕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양국의 갈등이 이미 무역전쟁을 넘어 첨단기술 등을 놓고 벌이는 헤게모니(패권) 다툼으로 치달은 만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공존’을 위한 ‘정치적 합의’로 조기 종식될 일이 아니라는 게 손 교수의 생각이다. 손 교수는 “양국의 갈등은 2020년 미 대선 직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엔 최대 악재 중 하나다. 가뜩이나 내수 부진과 고용 침체에 신음하고 있는 한국 경제가 대내외 ‘2중고(苦)’에 직면할 공산이 커졌다는 게 손 교수의 우려다. 그는 “중국에 수출하는 중간재 품목이 70%가 넘어 한국의 대중 수출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그 파장은 삼성과 LG, 현대차 등 대기업들로까지 전이될 수 있다”고 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 전망 근거는.
△헤게모니 다툼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제조 2025를 둘러싼 첨단기술 패권 싸움이다. 미국 내에서도 글로벌 무역갈등에 대한 우려는 크지만, 대(對) 중국전(戰)은 예외다. 정치권에서도 우방국과의 갈등에는 반대 목소리를 내지만, 중국전만은 지지한다.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미 농민들도 “중국엔 질 수 없다”고들 한다. 중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주도권을 쥔 국가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기업과 인민의 반발을 누르기 쉽다. 게다가 선거를 치를 필요도 없다. 정치적 걱정이 없다는 의미다. 물론 타임라인은 있다. 2020년 재선을 염두에 둔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한 내년 말까지 이 이슈를 끝내려 할 것이다.
-어떻게 결론이 날 것 같나.
△중국은 이제 운동화 같은 건 팔기 싫다는 거고, 그렇다고 첨단기술을 훔치는 건 안 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막판 절충과 타협을 통해 결론 날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개정 협상 과정을 보면 얼추 유추할 수 있다. 양국은 양대 이슈인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문제와 중국의 미국 첨단기술·지식재산권 도용 문제에 대해 합의를 볼 것이다. 중국도 일정 수준에서 양보하는 모습을 취할 것이다. 그 정도의 여력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직전 무역전쟁의 ‘승리’를 선포할 거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엄포에 불과하리라고 확신한다. 무역전쟁은 결국 협상을 통해 해결될 텐데, 만약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자체만으로 파국이다. 미국이 충분히 위협 도구로 사용은 하겠지만, 그 정도의 강경책을 실제 쓰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대비할 방법이 있나.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정도다. 당장 수출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대기업들도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을 것이다. 한국은행이 금리 조정을 통해 쿠션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향후 50년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지난 50년간 우리는 자동차, 조선, 반도체, 휴대폰으로 그나마 먹고살았다. 중국의 중국제조 2025와 같은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미 실리콘밸리를 보라. 기업들이 첨단기술을 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벤처캐피탈이 더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정책의 중심축을 혁신 중소기업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 중소기업을 강하게 육성하는 대만식 경제를 참고해야 한다.
-어쨌든 미국 경제는 호황이다.
△맞다. 감세와 규제혁파, 확장적 재정지출 등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덕분이다. 그 결과 2분기 성장률은 4.2%(연율)를 기록했다. 1분기 2%를 합치면 상반기에만 3%대를 웃도는 수준이다. 문제는 트럼프식 정책이 중장기적으로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지금 경기가 좋으니 소비자들은 자동차를 사고 있고, 기업들도 설비투자에 나서고 있다.2~3년 후에는 어떨까. 소비자들이 또 자동차를 사고, 기업들이 다시 투자에 나설까. 회의적이다. 내가 2020년 말께 경제절벽에 직면하리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미국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앞두고 2020년께 더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쓸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막대한 재정적자는 미 경제를 더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
-역대 최장 강세장을 이어가는 미국 증시의 향배는.
△증시에서 가장 중요한 섹터 역시 경제성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통계를 보면, 국내총생산(GDP)이 오를 때 주식시장이 같이 뛸 확률은 84%에 달했다. 지금은 증시가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2020년께 미 경제가 하강 국면으로 진입하면 증시도 꺾일 공산이 크다.
-미국 자본시장 상황은.
△경제에 대한 금융의 서포트는 매우 훌륭한 수준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돈을 빌리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융자에 인색했다가, 최근 몇 년간 스탠다드를 낮췄다. 점진적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스탠스도 적절하다. 다만, 최근 들어 자동차 대출과 학자금 대출에서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흐를 공산은 크지 않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