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선충당금은 지금이 아닌 미래에 공동주택 유지관리를 위해 사용하기 위한 비용을 미리 적립하는 저축입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30조에서는 ‘관리주체는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공동주택의 주요 시설의 교체 및 보수에 필요한 장기수선충당금을 해당 주택의 소유자로부터 징수해 적립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장기수선계획은 건물외부, 건물내부, 전기·소화·승강기, 급수·가스·배수·환기시설, 난방·급탕설비 등 공용 시설에 대한 수리계획을 말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이 아닌 미래’에 사용할 비용을 지금의 아파트 소유자에게 걷어서 적립하기 때문에, 지금의 납부자(현재 장기수선충당금을 내는 소유자)와 미래의 사용자(미래 장기수선충당금 사용시기의 소유자) 간 미스매치(Mismatch) 현상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즉, 아파트 매매시 현재 내는 사람과 미래 사용하는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죠. 더욱이 우리나라는 아파트 매매 및 이사하는 비율이 다른 나라들보다 높은 편인데요. 어차피 매매 및 이사할 거라면 지금의 아파트 소유자는 최대한 장기수선충당금을 적게 내려고 할 겁니다.
아파트의 가격, 준공년도, 세대수, 면적, 위치, 장기수선충당금 납부 기간 등이 유사한 A아파트와 B아파트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A아파트는 우리나라 평균수준으로 월 장기수선충당금을 100원/㎡ 부과하고, B아파트의 경우에는 미래에 사용할 예정인 비용을 미리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다른 단지에 비해 더 많은 장기수선충당금(월 1000원/㎡)을 부과한 겁니다. 그렇다면 A아파트 소유자는 지난 10년 동안 120만원의 장기수선충당금을 납부했을테고, B아파트 소유자는 1200만원을 냈겠지요. B아파트 소유자가 A아파트 소유자에 비해 1080만원 더 많은 비용을 부담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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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 아파트 매매시에 장기수선충당금이 얼마나 적립돼 있는지, 그 동안 얼마의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해 유지보수를 진행했는지 등 관련 정보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죠. 이로 인해서 집을 사는 사람이나, 집을 파는 사람 모두 장기수선충당금 관련 정보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아파트 매매를 진행하고 있고요. B아파트 소유자가 장기수선충당금을 더 많이 적립해 놓았다고 해서 아파트를 더 비싸게 팔기도 어려울 겁니다.
우리나라 아파트 소유자들은 장기수선충당금을 납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작지 않습니다. 아파트에 입주해서 20~30년 이상 거주하는 소유자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에게 안전하게 오랫동안 사용하기 위한 비용을 ‘지금’ 많이 납부해야 한다고 한다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겁니다. 보다 원활하게 장기수선충당금을 적립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 세제혜택, 장기수선충당금 적립 효과 홍보 등 아파트 소유자들이 거부감 없이 동참할 수 있는 유인책에 대한 논의가 더 확대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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