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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등에서는 2심 재판부가 두 가지 핵심 쟁점을 판단하는데 있어 △이 부회장에게 ‘인위적 승계작업’이 필요했는지 △삼성이 뇌물로써 정유라에게 말을 사줬는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에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는 대가로 정유라를 지원한다’는 합의가 존재하는지 등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李부회장, ‘인위적 승계작업’ 있었나
1심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을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포괄적 승계작업’이 존재했고, 이를 위해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현 공정거래위원장) 등의 주장을 근거로 ‘포괄적 승계작업’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과정에서 삼성의 ‘승계작업’을 입증할 만한 구체적· 직접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특검이 두 차례에 걸쳐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압수수색했지만, ‘승계작업’과 관련된 내부 문건은 나오지 않았다. 현재 지분구조 하에서도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과 동등한 수준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인위적인 승계작업을 진행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높아 보인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작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응했다’는 증거도 나오지 않고 있다. 물론 뇌물죄 사건에서 ‘구체적인 스모킹 건’이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번처럼 독대 자리만으로 ‘대가관계를 묵시적으로 인식했다’고 주장하는 사례도 흔치 않다.
1심 53회, 항소심 17회 등 총 70차례에 걸친 공판 내용을 보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자리는 묵시적 청탁으로 보기 힘든 정황들이 나왔다. 1차 단독면담은 5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끝났고, 2차와 3차 면담에서는 각각 승마지원과 JTBC 보도에 대해 이 부회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질책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3번의 독대, 묵시적 청탁 가능했나
1심 재판부는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로부터 “이재용이 VIP 만나서 말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냐”는 말을 들었다는 점을 인정해 삼성이 최씨에게 말의 소유권까지 모두 이전해준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항소심 증인으로 출석한 최씨는 법정에서 ‘마필의 소유권은 계약에 따라 당연히 삼성전자에게 있는 것’이라며 “말 소유권을 넘겼다는 것은 검찰이 넘겨짚은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이 ‘승마선수 정유라’ 지원을 위해 말을 빌려준 것이지, 말의 소유권까지 최씨에게 넘겨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코어스포츠와의 용역계약서 △말을 자산으로 등록한 삼성전자 회계장부 △마필중개상 안드레아스와 작성합 마필 소유권 확인서 등 말의 소유권이 삼성에게 있다는 다수의 문건이 나왔다. 삼성전자는 해당 마필을 국내에 들여와 용인 소재 승마장에서 키우기도 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두 사람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묵시적 청탁’ 논리로 유죄를 선고하기는 힘들다”면서도 “재판부가 여론을 의식해 유죄 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원심 재판부가 정치적 요구에 휘둘려 법정증거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외면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면서 “항소심 재판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