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언론보도 뒤쫓는 뒷북 수사 굴욕
검찰이 본격적으로 사건을 붙잡은 것은 지난 9월29일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접수하면서부터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관련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에 대한 의혹이었다. 검찰은 지난달 5일에야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했다. 검찰의 안이한 사태 인식을 드러낸 조치였다.
사건의 규모와 사안의 무게감에 비춰 수사를 특수부 쪽으로 넘겨야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재단 쪽에서 증거를 인멸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수사는 진척이 없었다. 늑장 대응 탓에 핵심 증거인 최씨의 태블릿PC를 언론사에서 넘겨받는 굴욕을 자초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1차 대국민 사과(10월25일)를 계기로 태도를 바꿨다. 곧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검찰 3개 부서를 전담 수사인력으로 투입했다.
이전의 검찰 중앙수사부를 뛰어넘는 것은 물론 웬만한 지방지청과 맞먹는 검찰 역사상 최대규모다. 최씨, 안 전 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실비서관은 지난 20일 재판에 넘겨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 공무상비밀누설죄의 공범으로 엮였다. 고발장을 접수하고 29일간 꾸물거리며 못한 일을,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25일 만에 끝냈다. 수사의지가 문제였다는 방증이다.
◇제 식구 겨누는 부담은 특검 몫으로
이후 검찰은 박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고, 박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계속 거부했다. 양쪽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동안 여론의 이목은 대통령 직접조사 여부에 쏠렸다.
그러는 사이 이 사건 또 다른 핵심 인물 두 사람에 대한 수사는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렸다. 바로 김기춘 전 실장과 우병우 전 수석을 겨냥한 수사였다. 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한 두 사람이 사태를 처음부터 인지하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묵인한 꼴이라서 책임 소지가 있었다. 최씨 측근 차은택(구속기소)씨가 우 전 수석을 배경으로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과 최씨와 관계를 부인해온 김 전 실장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30일까지 둘의 소환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했지만 소환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특수본은 우 전 수석의 조사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기도 했다.
우 전 수석이 지난 6일 개인비리 의혹으로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구고검장)에 소환된 당일, ‘최순실 게이트’ 조사도 이뤄질 수 있었지만 무산됐다. 양쪽에서 조사를 받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나중에 우 전 수석은 이른바 ‘황제수사’를 받고 돌아간 것이 드러나면서 비판을 받았다. 특수본 관계자는 이날 “우 전 수석을 소환할 계획은 정해진 바 없다. 필요하면 소환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도 소환일정이 정해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중립성 시비에 휘말리느니 차라리 특검에 맡긴 것으로 보는 분석이 있다.
익명의 서초동 변호사는 “검찰이 제 식구를 겨냥해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 특검에 수사를 넘기는 영리한 전략을 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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