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데일리 김혜미 특파원] “이 극장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 공연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
여름철마다 약 10만여명의 뉴욕 맨해튼 시민과 관광객들을 즐겁게 하는 무료 야외 공연 중 하나인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Shakespeare in the park)는 공연 시작 전 이같은 멘트를 한다. 센트럴파크 내 야외공연장이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공유 자산이며 무료 공연을 제공하기 위해 기여한 주체가 누구인지를 알리는 것이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짧은 말이지만 듣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자신도 모르게 기업 이름을 기억하는 계기가 된다.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는 무료 공연이지만 배우들 실력이 굉장히 높고 무대장치 등도 수준급이다. 그저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정말로 브로드웨이와 같은 수준의 괜찮은 공연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훌륭한 공연을 좋은 환경에서 즐기고 난 관객들은 미래의 기부자가 된다. 관객들이 무료 티켓을 받는 방법은 당일 지정된 장소에 줄을 서서 선착순으로 받거나 이메일로 추첨받는 방법이 있는데 단돈 10달러라도 기부를 하면 지정좌석 티켓을 지급받는 등의 혜택이 있다. 주최 측인 퍼블릭 씨어터는 이메일 추첨을 통해 티켓을 지급받은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이메일을 보내 새로운 공연을 알리는 한편 기부를 권유하고 그만큼의 혜택을 준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빈 필하모닉 등과 함께 세계 3대 필하모닉으로 꼽히는 뉴욕필하모닉도 여름이면 센트럴파크에서 무료 공연을 진행한다. 해가 질 무렵인 저녁 8시에 시작해 공연이 끝나면 화려한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이 공연 역시 선착순으로 무료 입장할 수 있지만 무대와 가까운 곳은 모두 기부자들을 위해 배정한다.
미국에서 기부란 자연스런 ‘문화’다. 특히 문화와 예술의 도시 뉴욕도 예외는 아니다. 매주 금요일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데 이는 일본계 의류업체 유니클로가 후원하기 때문이다. 유니클로는 자신들의 후원 서비스를 티켓에 새겨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 뮤지컬 등 문화공연장에서는 건물 내부는 물론 웹사이트에도 금액별 기부자 이름이나 기업명을 새기고 있다.
한국에서도 기부가 자리잡혀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문화’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특히 불우 이웃이나 교육과 관련된 기부에 비해 예술이나 레저 등에 대한 기부는 인식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예술이 주는 위로나 위안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기부한 뒤 돈이 어떻게 쓰여지는 지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게 제공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기부란 널리 알리기보다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한다는 인식도 영향을 주는 듯 하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세계적인 수준의 한국 예술인들 역시 좋은 취지로 수준급 공연을 선보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노숙인들도 클래식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결성된 한 오케스트라의 감독은 대다수 관객이 한국인이었던 어느 공연에서 총 기부금이 30달러에 불과했다고 털어놨다. 가치를 수치로 평가할 수 없는 예술에 대한 기부가 좀더 활발해지고 또 기부자에 대한 평가를 그만큼 높이 사는 기부 문화가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