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의 두 배 이상의 월급을 받는 3040 남성 전문직들은 오히려 재테크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이들은 은행권 PB들에게 한마디로 ‘봉’이었다. 특별히 많은 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이 권하는 대로 각종 상품에 가입해 은행의 수수료 수입에 기여하고 있었다.
평소 마음껏 못했던 돈 얘기를 마음 놓고 하자는 취지인 본지 ‘재테크 직구토크’ 코너의 이번주 초대 손님들은 3040 남성 전문직들이다. 강남에서 자신의 병원을 개업한 치과의사 이모씨(40)와 강남역 모발이식 센터의 페이닥터 김모씨(38), A병원의 페이닥터 조모씨(35)가 참석했다. 이들은 “자신만의 기준 없이 은행 PB들의 말만 듣고 금융 상품에 가입했다가 낭패를 봤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재테크에 관심은 많지만 신경 쓰는 게 싫어 차라리 즐기고 사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4일 토요일 저녁 7시 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한 일식집에서 본지 재테크 자문위원인 방효석 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 변호사와 함께 진행한 ‘3040 남성 전문직’ 토크를 소개한다.
◇은행 PB들도 잘 모르고 추천…자기 기준으로 투자해야
▶성선화 기자(이하 성)=연봉 1억원 이상 젊은 전문직 남성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들 한 달 월급이 1000만원 이상이다. 마음만 먹으면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훨씬 더 좋은 재테크 환경을 갖춘 분들이다. 다들 어떻게 재테크를 하고 있나. 이중 개업 경력이 가장 오래된 이 원장님께 먼저 묻고 싶다. 강남에서 개업의로 활동 중이신데.
▶이모씨(이하 이)=요즘엔 괜찮은 ELS(주가연계상품) 정도만 가입하고, 그냥 현금을 쌓아두는 편이다. 그동안 은행권 PB들의 추천으로 각종 금융 상품에 가입해 봤지만 손해를 많이 봤다. 개인적으로 펀드에 5억원을 투자했다가 2억 5000만원까지 손해를 본 쓰라린 경험이 있다. 그때 이후로는 스스로 잘 모르는 상품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않는다.
▶김모씨(이하 김)=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 페이닥터 일을 시작한 지 2년 정도다. 솔직히 내가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냥 PB들이 와서 권하니까 가입하는 상품이 많다. 이 원장님에 비하면 모아놓은 현금이 적은 편이다.
▶성=최근에 가입한 상품이 뭔가?
▶김=잘 모르겠다. 하하. 주거래 은행 PB가 좋다는 상품이 있어서 그냥 가입했다.
▶이=처음엔 나도 그랬다. 잘 모르니까. 하지만 주변에서 소개받은 PB들 말만 듣고 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봤다. 한순간에 2억 5000만원 날아가니까 그때부터 눈이 뒤집혔다. 최근에도 은행 PB들의 권유로 브라질 채권에 투자할 뻔 했는데 안 하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지난해 말부터 한창 브라질 채권 바람이 불 때 들어간 사람들은 지금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 PB들도 잘 모르면서 트렌드에 따라 투자를 권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성=올 초 600원대였던 헤알화 환율이 최근 400원대까지 떨어졌다. 올초 브라질 채권에 투자한 사람들의 손해가 막심한데, 그때 은행 PB들의 권유에도 투자를 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
▶이=브라질 채권에 대해 잘 알았다기 보다는 내가 잘 모르는 곳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그랬다. 사실 브라질이란 나라에 대해서 잘 알아서가 아니라 ‘잘 몰랐기’ 때문에 투자를 안 한 것이다.
▶방효석 변호사(이하 방)=은행권에 있긴 하지만 은행 PB들도 모든 상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다 알지는 못할 수 있다. 설사 리스크에 대해 알고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상품을 팔아야 하니까 적게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조모씨(이하 조)=전문직들이 오히려 재테크를 잘 못하는 것 같다. 나도 최근에는 그냥 현금을 MMF 통장에 넣어두기만 한다. 게다가 아이가 둘이나 있다 보니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길어야 40~50년 일 텐데 이것저것 신경 쓰면서 살고 싶지 않다. 최근에 집을 넓히고 수입차를 사느라 남은 현금이 거의 없다.
◇고도의 스트레스 직업…재테크 스트레스까지 감당 못해
▶박종오 기자(이하 박)=얼마 전 억대녀 직구토크 땐 절약에 관한 얘기를 주로 했다. 확실히 남성들의 재테크는 절약을 습관화하는 여성들과는 차이가 있다.
▶조=남자들은 재미있는 게 있으면 돈을 쓰는데, 그런 게 없으면 귀찮아서라도 돈을 안 쓰게 되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도 신경 쓰는 건 딱 질색이다. 최근 집을 넓혔는데 대출을 하나도 받지 않았다. 두 대의 수입차 구입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출을 받고 리스를 받는다는 게 상당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재테크도 필요 없고 내가 편한 게 제일 좋다.
▶방=요즘 젊은 층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 로펌에 있다가 사내 변호사로 옮긴 이유가 삶의 질을 위해서다. 물론 연봉은 조금 줄었지만 저녁 시간이 보장되고 스트레스가 적은 편이다. 재테크는 오히려 아내에게 맡긴다. 내가 카드를 쓰면 아내에게 문자가 가도록 해 놓았다. 아내 역시 의사로 전문직인데, 둘이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데 지출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전공 분야가 확실한 전문직들은 재테크를 어떻게 할까 에너지를 쏟는 것 보다 차라리 내 사업에 힘을 쏟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재테크의 신경을 쓴다고해서 잘 된다는 보장도 없다.
▶김=싱글인 나도 레저생활에 돈을 많이 쓴다. 각종 수상 스포츠를 다양하게 즐긴다. 혼자서 쓰는 생활비가 한 달에 500만원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성=나머지 현금은 그냥 쌓아두고 재테크는 전혀 하지 않나.
▶김=현금이 쌓이면 금을 사 모은다. 일종의 취미생활 같은 거다. 만약에 전쟁이 났을 때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 봤다. 금 밖에 없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금 시세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다.
▶박=최근 금값이 많이 떨어졌다. 손해는 안 봤나.
▶김=손해는 안 봤다. 다만 내가 금을 사는 시세에 대한 기준이 확실하다. 온스당 18만 2000원 이하로 떨어지면 조금씩 사서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투자한 금들은 이 가격 밑에서 산 것이다. 당장에 현금화 시킬 생각은 없다. 멀리보고 하는 투자다.
▶방=금테크 같은 경우는 그야말로 장기로 보고 하는 투자인 것 같다. 향후 금값이 크게 오를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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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테크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자신 만의 확실한 기준을 가진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남들의 말에 팔랑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개인적으로 ELS 투자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있다. 삼성전자 주가와 코스피 지수를 보고 들어가는 것이다. ELS 상품구조가 삼성전자나 코스피과 연계된 상품에 주로 투자한다. 현재 삼성전자 주가가 주당 130만원 정도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40% 이하로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ELS 상품 조건에서 삼성전자 주가가 78만원선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데 배팅을 하는 것이다.
▶방=확실히 고액 자산가들을 상담하다 보면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남에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코스피의 경우는 1800선이면 괜찮다고 본다. 최근에 들어간 ELS는 코스피이 1800선일 때 들어가서 조만간 조기상환 될 것 같다.
▶박=저축성 보험상품은 어떤가. 최근에 고액 자산가들이 많이 가입했는데.
▶이=저축성 보험상품에는 아예 가입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와서 가입해 달라는 통에 몇 개 들어줬는데 남는 게 없어서 모두 해지해 버렸다.
▶방=저축성 보험상품의 사업비에 대해 잘 따져봐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보험상품은 사업비가 많기 때문에 결국 비과세 혜택을 받아도 크게 남는 게 없다. 예를 들어 1억원을 10년 동안 매해 다시 정기예금에 하는 것과 10년 짜리 보험 상품에 가입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1억원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 20만원 안팎 정도에 불과하다.
▶성 =올초 세법 개정으로 중도 상환 규정이 없어지면서 저축성 보험의 매력이 더 떨어진 것 같다.
▶김=은행 PB의 권유로 비과세 저축성 보험에 가입한 것 같다.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할 것 같다.
▶방=저축성 보험에 적합한 연령층이 있는 것 같다. 아직 젊은 30~40대에게는 잘 권하지 않는다. 다만 상속, 증여의 필요가 있을 경우 상속인의 이름을 다르게 해서 가입하면 절세 효과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