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뉴욕증시가 다시 하락했다. 장중 내내 보합권을 오가다 막판 유로존 위기에 따른 미국 은행들의 위기 경고에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경제지표 호조도 큰 힘이 되지 못했다.
16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전일대비 190.57포인트, 1.58% 하락한 1만1905.59로 장을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전일대비 20.89포인트, 1.66% 낮은 1236.92를, 나스닥지수는 46.59포인트, 1.73% 떨어진 2639.61을 각각 기록했다.
장 초반부터 혼조양상이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의 국채금리가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영란은행이 유로존 성장 전망에 대해 부정적 발언을 내놓은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
이날 마빈 킹 총재는 "유로존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고 이는 앞으로 시장심리나 자산가격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다음달 금리결정회의에서 추가로 자산매입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또 루카스 파파데모스 그리스 총리가 요구한 새 연립정부에 대한 신임안이 의회를 통과했고, 이탈리아가 마리오 몬티 총리를 위시한 새 정부를 출범하기로 한 것이 불확실성을 낮춰줬다.
특히 미국 경제지표가 호조세를 보이며 낙폭을 제한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10월 산업생산이 전월대비 0.7% 상승해 시장 예상을 뛰어넘었고, 10월 소비자물가(CPI)도 전월대비 0.1% 하락해 넉 달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장 막판 피치사가 "유로존 위기가 더 악화될 경우 미국 은행들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자 은행주를 중심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모간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각각 7.97%, 4.16% 하락한 가운데 씨티그룹도 4.14% 내려가는 등 은행주들이 일제히 하락했다.
의류업체인 아베크롬비앤피치는 실적 전망치에 못미치는 이익으로 13% 이상 급락했고 델 역시 연간 매출 전망에 못미치는 실적으로 3.2% 떨어졌다. 소매업체인 타켓은 이익 증가에도 불구하고 0.45% 소폭 하락했다.
어플라이드머티리얼과 넷앱, 리미티드브랜즈도 장 마감 이후 실적 발표 우려로 1%대의 하락률을 보였다.
반면 리서치인모션(RIM)은 골드만삭스가 투자의견을 `매도`에서 `중립`으로 상향 조정함에 따라 0.42% 올랐고 주택 심리지표 호조로 D.R.호턴과 톨 등 건설업체들이 1%대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 피치 "美은행, 유럽 악화땐 심각한 위험 직면"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피치사는 미국 은행들이 유로존 재정위기가 더 악화될 경우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피치사는 미국 은행들에 대한 보고서에서 "만약 유로존 재정위기가 적절한 시간 내에, 질서있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미국 은행산업의 신용 전망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은행들은 현재 그리스와 아일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의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익스포저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지만 추가로 감염될 수 있는 리스크가 크다"고 강조했다.
피치는 현재 미국 은행업에 대해서는 `안정적`이라는 신용등급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대부분 은행들이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펀더멘털이 개선된 덕"이라고 설명했다.
◇ 美 산업생산 `서프라이즈`..인플레 안정
미국 산업생산이 4분기 들어 첫 달인 10월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호조세를 보였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공장, 광업, 유틸리티를 포함하는 10월 미 산업생산이 전월대비 0.7%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월 수정치인 0.1% 감소는 물론 시장 예상치인 0.4% 증가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특히 전체 생산의 75%를 차지하는 공장 생산이 전월대비 0.5% 늘어나며 상승세를 주도했다.
또 이날 전미주택건설협회(NAHB)는 11월중 주택시장지수가 20을 기록, 시장 예상치인 18을 상회했다. 10월 수정치인 17도 크게 웃돌아 지난해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울러 미 노동부는 10월중 소비자물가(CPI)가 전월대비 0.1%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6월 이후 넉 달만에 처음으로 하락한 것이며 제로(0)를 점쳤던 시장 예상치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전년동월대비로도 3.5% 상승, 시장 예상치인 3.6%를 밑돌았다.
◇ 그리스 총리 신임안 통과
공식 출범 엿새째를 맞은 그리스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가 의회로부터 신임을 받는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향후 2차 구제금융 지원안을 받을 수 있는 추가 긴축조치를 추진하는데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그리스 의회는 파파데모스 신임 총리가 제안한 새 과도 내각에 대한 신임안을 표결해 총 300석 가운데 찬성 255표, 반대 38표로 이를 가결했다.
내년 2월까지 임기 3개월의 임시정부 수반에 대한 신임투표가 이례적이긴 하지만, 의회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새 내각이 자발적으로 신임투표를 요구한 것으로 의회내 5개 정당들 가운데 3개 정당이 그를 지지하면서 가결이 유력했었다.
다만 이날 신임투표에서 승리했지만 파파데모스 총리가 유로존의 구제금융 지원과 그 전제인 긴축이행 계획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낙관하긴 어렵다.
◇ 佛·스페인, 국채금리 급등..`구두개입`
이탈리아에 이어 프랑스와 스페인 국채금리도 불안양상을 보이자 양국 정부가 잇달아 구두 개입에 나서며 금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날 프랑스의 발레리 페크레스 예산장관은 기자 브리핑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 시장 안정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현재 프랑스와 독일 국채금리간 스프레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브리핑에 나선 호세 마누엘 캄파 스페인 재무차관 역시 "스페인 국채금리가 독일 국채금리가 현재처럼 장기간, 높은 금리 차이(스프레드)를 보일 펀더멘털측면의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국채금리는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10년만기 국채 스프레드는 장중 유로존 출범 이후 최고치인 195bp까지 치솟았고 스페인 국채금리는 6.2%대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