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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임명규 기자]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져야 할 기업들이 세금을 빼돌려 배를 불리고 있다. 방위산업체 수 곳은 군수장비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려 국가에 팔아 넘겼고, 제약업체들도 같은 수법으로 수입 의약품을 비싸게 유통시켜 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검찰과 과세당국이 이들 업체의 혐의를 포착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공정사회 구현을 꿈꾸는 현 정부가 사활을 걸고 세금 축내는 기업들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혐의를 받고 있는 업체들은 이익을 적게 신고해서 세금을 줄이는 전형적 탈세 방식을 뒤집어 수입물품의 가격을 오히려 높게 신고하는 역발상을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수입 가격을 높이면 관세와 부가가치세 등 관련 세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기업들은 최대한 가격을 낮추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방위산업체와 제약업체가 수입하는 물품들은 국방이나 건강을 위한 필수 품목이라는 점 때문에 관세를 많이 내지 않는다. 따라서 수입가격을 얼마든지 높여도 세금 부담은 적은 대신, 실제로는 한참 모자란 가격에 거래하는 방식으로 차익을 챙길 수 있다. 국민들이 모아준 국방비와 건강보험료가 본연의 목적에 쓰이지 못한 채 일부 기업들의 배만 불려주는 셈이다.
방위산업 누가 주도하나
우리나라는 휴전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국방예산이 끊임없이 필요한데,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29조5000억원의 국방예산이 편성된 데 이어 올해는 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전력 보강이 이뤄지면서 다시 31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방위력 개선비는 9조원으로 3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는 국내 방위산업체의 가장 중요한 영업 기반이다.
방위산업체들은 각각 화력과 탄약, 기동, 항공유도, 함정, 통신전자, 화생방 등 주력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상위 10개 업체를 제외하면 매출 규모가 크지 않고, 다른 사업과 병행하면서 방위산업 물품을 생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위 업체들이 상위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한번 비리가 발생하면 크게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현재 방위산업법에 의해 지정된 업체는 총 91개다. 삼성테크윈(012450)과 삼성탈레스, 현대로템, 현대중공업(009540), LIG넥스원,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 두산DST, 한화(000880), STX엔진(077970), 풍산(103140) 등이 상위 10개 업체로 꼽힌다. 방위산업은 업종의 특성상 막대한 개발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주로 대기업 계열사들이 포진돼 있으며, 국가의 보안을 앞세우고 비밀스러운 로비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제3공화국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육성된 방위산업체는 초기 개발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대기업 계열사들 위주로 지정됐다"며 "이들의 영업은 국방 전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상당히 폐쇄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체별로 보면 삼성그룹 소속 회사들이 눈에 띈다. 상장회사인 삼성테크윈은 감시장비와 반도체 부품 장비를 생산하는 정공부문과 항공기 엔진 및 부품, 자주포 등을 생산하는 방산 부문으로 나뉜다. 삼성탈레스는 삼성전자와 프랑스 방위산업체인 탈레스 인터내셔널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회사로 자주포와 레이더 장비 등을 주로 생산한다. 지난해 삼성테크윈이 삼성전자(005930)가 갖고 있던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그룹 내 방위산업에 대한 교통 정리를 마무리했다.
한화그룹의 지주회사인 한화는 국내 화약시장에서 독보적인 업체다. 국내 방위산업체 중 유일하게 종합 탄약과 유도탄을 생산하며, 최근에는 여러 발의 로켓을 쏠 수 있는 다연장포 등 각종 신무기 개발에 나서면서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LIG넥스원은 유도무기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데 매출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한다. 군함과 잠수함에서 쏠 수 있는 유도 미사일 등 신형 장비들을 개발해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로템은 KTX 등 철도부문 사업 외에도 한국형 전차를 만들어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두산DST는 지난 2009년 두산인프라코어(042670)의 방산부문에서 독립 분할했으며, 장갑차를 주로 납품하고 있다. STX그룹 계열사로 창원에 본사를 둔 STX엔진은 주로 선박엔진을 만들면서 방위산업에 사용되는 디젤엔진을 공급한다. 방위산업을 이끌고 있는 상위 업체들은 주로 대기업 계열사이면서 각기 주력분야를 중심으로 사실상 독점적인 사업을 진행한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비리 `시한폭탄`
지난 4월 관세청은 경남 양산지역 방위산업체 N사와 대표이사 안모 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 업체는 2008년 3월 천안함에 사용된 음파탐지기의 핵심 부품을 미국 무기중개업체로부터 수입해 통관하는 과정에서 가격을 1만5000달러에서 6만3000달러로 4배 이상 부풀려 신고하는 등 15차례에 걸쳐 허위 송장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N사는 허위 송장을 근거로 방위사업청에 원가 증빙서류를 제출했고, 부풀려진 가격 그대로 납품 대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경남 창원에서 낙하산을 만드는 D사가 최근 수입 가격을 부풀려 납품한 사실이 적발돼 관세청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현재 국방부는 관세청에 전국 22개 방위산업체의 관세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관세당국은 이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이익을 챙겼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며, 사전 분석단계를 거쳐 일부 업체에 대해서는 현장에 조사반을 파견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방위사업청도 관리부실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뿐더러, 업체와의 유착 가능성까지 대두되는 등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국방예산을 집행하는 정부기관이 방위산업체가 납품하는 군수장비 가격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책임이 우선이다. 만일 방위사업청이 업체의 로비를 받아 위법 사실을 알고도 눈감아줬다면 사안은 더욱 심각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방위사업청 직원들이 직접 업체에 가서 군수장비 납품과정과 가격에 대해 면밀하게 따져보기 때문에 이들을 속이는 일은 쉽지 않다"며 "서로 짜고 하지 않으면 가격 부풀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N사는 군 당국뿐만 아니라 대기업 계열 방위산업체에도 군수장비를 납품한 것으로 알려져 의혹이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방위산업 시장은 대기업 계열사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들이 군납 비리에 연루됐는지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다.
불과 수년 전까지 효성과 LIG넥스원, STX엔진 등 대기업 계열사들이 군납 비리로 거센 홍역을 치른 전례가 있어 업계에서는 이번 방위산업체 일제 조사에 대해 적잖은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도 연루?
사정당국은 대기업 계열 방위산업체들이 해외 무기 중개업체나 국내 하청업체와의 거래 과정에서 단가 부풀리기나 불법 로비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다.
최근 위법 사실에 대한 분석을 마치고 일부 업체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혐의점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과세당국은 아무런 근거 없이 조사반을 현장에 투입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기 때문에 사전 분석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현재 주요 방위산업체에 대한 분석에 이어 본격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군수장비를 수입할 때 고가로 신고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거래내역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체들도 방위산업체와 유사한 방식으로 약값을 부풀리고, 비자금을 조성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미 지난해 초 국세청이 제약업종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여 병원 등에 지급한 리베이트 자금을 찾아내고 거액의 세금을 물렸지만, 업계의 뿌리깊은 관행을 솎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하반기에는 보다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과세당국에서는 제약업계 상위 업체인 A사와 대기업 계열 B사, 외국계 C사 등을 조만간 조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에서 의약품 가격 인하와 건강보험 재정 개선을 위해 리베이트 근절을 당면 과제로 삼고, 한층 강력한 지시를 내렸다는 후문이다.
제약사의 뒷돈 만들기
현재 과세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제약업체의 리베이트 자금마련 수법은 역시 `고가 신고`에서 출발한다. 가령 우리나라 제약업체가 외국 회사로부터 100원짜리 약을 수입하면서 200원에 수입했다고 세관에 신고한 후, 나머지 100원은 리베이트 자금으로 쓰는 구조다.
해외에 200원을 모두 송금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경우 실제 약값을 제외한 100원은 현지에서 우리나라 의사나 약사의 체류 비용으로 건네주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든 최대한 회계장부에 기록을 남기지 않고 비자금을 조성해 리베이트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약업체가 뒷돈을 찔러주기 위해 의약품을 실제 가격보다 부풀려 판매하는 만큼 건강보험의 지원금액은 늘어나고, 이는 보험 가입자들의 부담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국민 건강을 담보로 이들이 벌이는 위험한 거래는 국민의 호주머니까지 파고들어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제약업체가 납품 가격을 높인 후 남는 금액을 리베이트 자금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부당하게 가격을 올린 부분은 국민들의 건강보험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에 더욱 세밀하게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약 리베이트 왜?
제약사들이 의약품의 선택권을 가진 의사나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야 하는데, 그 중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방식이 오래 전부터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정부도 제약업계에 대해 끊임없이 합동 단속과 제도 개선을 병행하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9년 8월부터 리베이트 의약품에 대해 약가를 최대 20% 내리도록 규정한 리베이트 약가 연계제도를 도입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엔 뒷돈을 받는 의사를 형사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까지 도입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제약업계의 해묵은 관행을 근본적으로 씻어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도 중요하지만, 업계 전반에서 리베이트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4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4호 마켓in은 2011년 8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81, bond@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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