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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월가의 칼바람

이의철 기자I 2002.11.11 08:45:32
[뉴욕=edaily 이의철특파원] 월가가 위치하고 있는 맨하튼은 겨울이 빠르다. 허드슨강의 강바람이 제법 쌀쌀하고 빌딩숲으로 둘러쌓여 햇볕도 잘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가의 체감온도는 일찌감치 영하의 한겨울이다. 감원의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는 탓이다.

메릴린치 프라이빗 뱅킹(PB)부문에 근무하는 매니저급 중간 간부는 "옆자리의 동료가 어느 날 짐을 싸면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라며 "오전에 해고 통보를 받으면 출입증을 반납하고 짐을 싼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사무실의 "살벌한" 분위기를 전했다. 해고 통보가 주로 메일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e메일을 열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는 게 이 간부의 설명이다.

월가의 감원바람은 침체장이 지속되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했지만 올들어선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최근 700여명의 감원을 발표한 메릴린치는 감원대상에 "간판스타"였던 브루스 스타인버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포함시켜 충격을 줬다. 메릴린치는 또 매튜 히긴스 이코노미스트와 데이비드 호너 재무전략가도 해고하기로 했다. 메릴린치는 비용절감을 위해 세계 전지역의 리서치 부문 규모를 축소중이다.

그간 "감원보다는 감봉" 정책으로 감원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리만브라더스도 칼을 빼들었다. 리만은 최근 유럽내 투자은행부문에서 80명을 감원했다. 리만과 같이 보수적으로 인력을 운용하는 회사가 감원을 단행한 것은 투자은행 부문 침체가 당분간 회복되기 힘들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함께 JP모건이 2000명 가량의 감원계획을 발표했고 크레디스위스퍼스트보스턴(CSFB)증권도 전체인력의 5~7%의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 시티그룹도 미국 본사 및 전세계 투자은행 부문 인원 200명을 포함해 1000명 가량을 줄일 것이라고 뉴욕타임즈 등이 보도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온라인증권사 찰스 슈왑도 추가 감원을 계획중이다. 찰스 슈왑은 지난해부터 미국 전역에서 전체인력의 30% 이상을 축소해왔지만 그간 본사 인력은 9.11테러 등의 이유로 감원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그러나 올해는 본사 인력에 초점이 맞춰져 "올것이 왔다"는 게 찰스 슈왑 본사직원들의 분위기다.

월가의 감원바람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은 지난 1년6개월 동안의 약세장에서 힘겹게 지탱해왔던 수익성을 그나마 맞추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미국기업들은 수익성이 악화되면 가장 먼저 사람을 짜른다. 이번 감원바람의 또 하나 특징은 투자은행부문에 감원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세계적인 경제 침체로 M&A 등과 같은 투자은행업무가 급격히 위축됐기 때문이다.

경제의 위축으로 겪는 어려움은 어느 업종이나 다를 바 없지만 월가의 상대적 박탈감은 올해 유난하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연말 보너스를 계획하고 있는 등 "한편에선 감원이 이뤄지지만 또 한편에선 인센티브가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헬스케어에서 카지노업종까지 올해말과 내년초에 걸쳐 보너스 지급 계획이 있으며 심지어 지난해보다 두둑한 보너스를 계획중인 기업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인 애트나는 올해 실적이 호전돼 보너스를 지난해 보다 더 많이 책정했다. 지난해 보너스를 주지 못했던 제너럴모터스는 올해엔 보너스지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소매업체 로웨나, 에너지기업 위스콘신에너지 등도 지난해보다 "두둑한" 보너스를 지급한다. 운송업체인 페덱스와 증권사인 리만브라더스는 지난해보다 다소 줄었지만 어쨌든 보너스는 나온다.

물론 포드자동차나 팜(핸드헬드 PC업체) 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보너스가 없다. 월가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특히 전통적으로 짭짤한 보너스를 챙겼던 월가의 증권맨들은 올해도 찬밥신세다. 사실 월가 증권맨들의 올해 최대 보너스는 "자리를 보전하는 것" 그 자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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