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문병언기자] 시중은행들이 고금리 소액대출을 주로 취급하는 대금업(소비자금융)에 너도나도 진출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낮은 조달금리를 무기로 국내에 진출한 일본계 대금업체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자 "돈 되는 시장"이라는 생각에 국내 대형 은행들도 대금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씨티은행과 신한지주에 이어 한미은행이 올 하반기부터 대금업시장에 뛰어든다. 하나, 조흥, 외환은행도 시장조사 등 구체적인 채비에 나섰다. 금융권에서는 앞으로 2~3년내에 거의 모든 은행들이 대금업에 가세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은행들의 움직임은 = 한미은행은 지난 23일 이사회를 열고 대금업시장 진출을 결의했다. 자본금 200억원의 여신금융전문회사를 설립해 7월말이나 8월초부터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출금리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보다 높지만 일본계 대금업체보다는 낮은 30% 안팎으로 고려하고 있다.
주고객은 은행대출을 이용할 만큼 신용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채시장에서 빌릴 정도는 아닌 "신용대출 사각지대" 계층으로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 한미은행은 처음에는 직원 5~6명을 둔 작은 지점 2, 3개에서 출발해 올해 안에 30개까지 늘릴 방침이다.
이에 앞서 씨티은행이 대금업을 위한 씨티파이낸셜코리아라는 자회사를 설립했으며 신한금융지주회사도 제휴를 맺고 있는 BNP파리바그룹의 자회사인 세텔렘캐피탈과 합작으로 소비자금융회사를 세워 6월쯤 영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자본금 200억원의 신한세텔렘캐피탈은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서민들을 상대로 연 20∼30%의 대출상품을, 씨티파이낸셜코리아는 20∼3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연 15∼30% 범위내의 대출상품을 준비중이다. 대출한도는 1000만원씩이다. 일본계 대금업체들의 1인당 평균 대출금이 300만∼500만원인 데 비해서는 다소 많은 수준이다.
국내 최대은행인 국민은행도 대금업 진출을 추진중이다. 자본금은 300억원 안팎이고 할부금융을 비롯한 소액 급전대출 등을 취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고리대금업을 제도권이 하지 않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계속 생기는 것"이라며 "고리대금업도 큰 은행이 해야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조흥, 외환, 하나은행 등도 내부적으로 대금업 진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우리은행은 기업금융에 주력키로 전략을 세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금업은 비싼 이자로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우량은행들이 앞장서서 뛰어들고 있다. "고리대금업을 한다"는 좋지 않은 시선 때문에 은행의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직접 대금업을 영위하기 보다는 자회사를 통해 진출하는 것도 특징이다.
◇왜 뛰어드나 = 기본적으로는 전통적인 은행업무에서의 경쟁 심화로 수익창출이 어려워지게 됨에 따라 사업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수익원 개발을 꾀하기 위한 것이다. 10%안팎의 대출금리 장사만 해온 은행들로서는 20~30%의 고금리를 받을 수 있는 대금업이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일본계 대금업체들과 국내 토종 대금업체들이 연 90∼100%의 금리로 영업하면서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자극제로 작용했다. 특히 실질금리가 0%인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급팽창하는 한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남기고 있다. 신청 즉시 대출해 주는 편리성을 무기로 삼고 있다.
A&O크레디트 프로그레스 등 일본계 6개 대금업체의 올 3월말 대출잔고는 6748억원으로 지난해말의 5405억원보다 3개월 사이에 24% 증가하는 등 황금알을 낳는 차세대 금융업종으로 급부상한 상태다.
국내 은행들은 기존 대금업체들이 연 90~100%에 달하는 고금리로 신용불량자 양산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면서 이들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들은 신용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수준보다는 높고 기존 대금업체의 급전대출에 비해서는 훨씬 낮게 금리를 책정, 제도권 금융회사와 고금리의 대금업체 중간층의 고객들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고객과 소비자금융의 주고객층은 다르다"며 "신용이 낮아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고객에게 은행권보다 약간 높은 금리로 대출해 주면 은행과 이용자 모두 이익이다"고 말했다.
◇약이냐, 독이냐 = 은행들은 현재 은행권의 대출금리가 10% 안팎인 상황에서 대금업에서 30%의 금리를 받으면 어느 정도의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개인 및 가계대출 시장은 "수요창출형"이라는 특성이 강해 먼저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대금업은 기본적으로 고위험, 고수익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스크 관리가 관건이다. 대금업의 발상지인 일본계 업체들은 50년간 쌓은 리스크 관리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담보를 통해 "안전한 장사"에 치중했던 은행들이 무보증 신용대출에 따른 위험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 지 의문시되는 게 사실이다.
또 대출금리가 90~100%에 이르는 일본계 대금업체에 비해 훨씬 낮은 20~30%의 금리를 받는 국내 은행들은 부실이 조금만 발생해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대금업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여서 당분간은 수요층을 확대할 수 있지만 은행들이 우후죽순격으로 가세하면서 금세 포화상태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이 이미지에 먹칠 할 것을 우려해 부실채권 회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못할 수도 있다.
게다가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까지 대금업에 가세하는 데 대한 사회적인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오는 7월부터 은행연합회를 통해 대출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에 대출관리 경험부족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내년 1월부터는 500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공유됨에 따라 리스크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2금융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용평가 및 사후관리시스템이 앞선 점도 내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계를 포함해 현재 영업중인 대금업체들의 부실채권이 생각보다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금융지주회사인 신한지주회사는 은행 신용카드 증권 보험 투신운용 등 모든 자회사들의 고객에 대한 영업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철저한 신용분석을 통해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