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 회기 만료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회 계류 중인 1만 6000여 개 법안 처리 여부가 관심사로 주목받고 있다. 여당의 총선 참패로 대다수 법안이 추진 동력을 잃은 데다 정치권의 초점이 새 총리 인선과 내각 개편에 집중됨에 따라 입법 활동이 개점휴업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계류 법안 중에는 민생 및 미래 먹거리와 직결된 쟁점 경제 법안이 적지 않아 정부는 물론 경제·산업계에서도 자동 폐기 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특별법)과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및 ‘유통산업발전법’ 등이다. 고준위특별법은 여야가 발의한 3건의 법안이 양측의 견해차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새 국회에서 논의할 경우 최소 1년은 더 걸릴 전망이다. 이 법의 시급성은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최악의 경우 원전 발전을 멈춰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데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는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시설이 6년 뒤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며 조속한 처리를 간곡히 호소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우리 원전 산업이 국내 폐기물 부지 선정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경쟁국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개탄스럽다.
산업기술 유출 방지 법안은 첨단 핵심 기술 보호가 산업계에 발등의 불로 떠오른 상황에서 꼭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지만 여야 충돌로 법사위에 묶여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달라진 소비자들의 쇼핑 패턴 등 현실에 뒤처진 점을 바로잡기 위해 대형마트들의 의무 휴업과 야간 배송 금지 등 족쇄를 걷어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2020년 국회에 제출된 후 3년 넘게 묵묵부답이었다.
21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 총 2만 5796건 중 처리 법안은 9452건(35%)에 그쳤다. 정쟁과 방탄으로 허송세월한 탓이다. 5월 30일이면 22대 국회가 시작하지만 원 구성을 거쳐 폐기된 법안들이 다시 논의되려면 몇 개월이 더 걸릴지 모른다. 민생이 외면받고 산업계의 속이 타들어가는 걸 생각하면 팔짱만 끼고 있을 순 없다. 사상 최악의 평가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여야는 밀린 숙제 처리에 발벗고 나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