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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원관리 업무를 하던 기간제 근로자 A씨는 2020년 9월 9일 오후 5시8분께 퇴근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서울 강동구 소재 지하철역 출구 앞 도로를 통행하던 중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넘어진 A씨는 뇌출혈 증상으로 의식을 잃고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다음 날 사망했다. A씨의 자녀인 원고들은 고인이 출퇴근 재해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고인은 도로교통법상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의 범칙행위가 주된 원인이 돼 발생한 재해로 사망했다”고 지적하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따른 출퇴근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유족들의 청구를 거절했다.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에 따르면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않는다.
이에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들은 재판과정에서 A씨의 행위가 산재보험법이 규정한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사고발생 장소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였고 횡단보도 앞에 정지선도 없으므로 고인이 보행자 보호의무를 위반했다거나 위반 정도가 중과실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고인이 횡단보도에 다다랐을 무렵 피해자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는 바람에 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 △사고 당시 70세였던 고인이 약 25도 경사의 내리막길에서 급제동하기 어려웠을 수 있고, 급제동하면 오히려 자전거가 전도돼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점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행위는 경미한 범칙행위에 불과해 산재보험법의 보호에서 배제될 정도는 아니라는 점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 영상에서 고인이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줄이려는 모습을 전혀 확인할 수 없다”며 “고인은 피해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는데도 일시정지하지 않았으므로 그 자체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교통사고 실황조사서에 이 사건 도로는 ‘평지’로 표시돼 있고 현장 사진상으로도 일시정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사건 도로가 내리막이라면 오히려 평소 이 도로를 다니던 고인의 주의의무를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와 그로 인한 A씨의 사망은 A씨의 범죄행위가 직접 원인이 돼 발생한 것이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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