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뇌출혈 사망…업무상 재해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성주원 기자I 2024.02.26 07:00:00

자전거 타고 퇴근…보행자 충돌 후 넘어져
유족급여 거절되자 소송…원고 패소 판결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범죄행위가 원인"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가 보행자를 치고 넘어지는 사고로 사망한 서울시 공무원에 대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보행자 보호의무를 위반한 ‘범죄행위’가 사고의 원인이 됐기 때문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사진=게티이미지
서울행정법원 제7부는 퇴근길에 사망한 공무원의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서울시 공원관리 업무를 하던 기간제 근로자 A씨는 2020년 9월 9일 오후 5시8분께 퇴근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서울 강동구 소재 지하철역 출구 앞 도로를 통행하던 중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넘어진 A씨는 뇌출혈 증상으로 의식을 잃고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다음 날 사망했다. A씨의 자녀인 원고들은 고인이 출퇴근 재해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고인은 도로교통법상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의 범칙행위가 주된 원인이 돼 발생한 재해로 사망했다”고 지적하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따른 출퇴근 재해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유족들의 청구를 거절했다.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에 따르면 근로자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않는다.

이에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들은 재판과정에서 A씨의 행위가 산재보험법이 규정한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사고발생 장소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였고 횡단보도 앞에 정지선도 없으므로 고인이 보행자 보호의무를 위반했다거나 위반 정도가 중과실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고인이 횡단보도에 다다랐을 무렵 피해자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는 바람에 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 △사고 당시 70세였던 고인이 약 25도 경사의 내리막길에서 급제동하기 어려웠을 수 있고, 급제동하면 오히려 자전거가 전도돼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점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행위는 경미한 범칙행위에 불과해 산재보험법의 보호에서 배제될 정도는 아니라는 점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 영상에서 고인이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줄이려는 모습을 전혀 확인할 수 없다”며 “고인은 피해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는데도 일시정지하지 않았으므로 그 자체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교통사고 실황조사서에 이 사건 도로는 ‘평지’로 표시돼 있고 현장 사진상으로도 일시정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사건 도로가 내리막이라면 오히려 평소 이 도로를 다니던 고인의 주의의무를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와 그로 인한 A씨의 사망은 A씨의 범죄행위가 직접 원인이 돼 발생한 것이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내렸다.

사진=이데일리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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