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침해 관련한 목소리가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학원 강사는 예외다. 교육·보육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이들도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교권을 침해당하고 있는데도 ‘사교육’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들에 대한 보호 장치는 외면하고 있어 교권 보호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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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강사의 문제는 초등학교 대상 학원에서 두드러진다. 대전에서 4년째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영어 강사 윤모(30)씨는 수업을 준비하는 것 외에도 수업 태도 관리, 학부모 상담 등 업무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윤씨는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학원비 얘기를 꺼내는 것은 일상”이라며 “숙제를 해오지 않거나,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하지 않아서 경고를 주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학업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수학을 가르치는 강사 A(29)씨는 “교재를 채점할 때 맞은 문제에만 ‘동그라미’를 치고, 틀린 문제에는 틀렸다는 표시 자체를 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며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어디까지 학생을 챙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학부모 상담 등도 고민이다. 규모가 큰 학원에서는 상담 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이 따로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이 상당수다. 또한 직접 학생을 담당하는 강사와 통화를 원하는 학부모도 많아 부담으로 작용한다. 영어 강사 박모(31)씨는 “웬만하면 출근 시간대에, 학원 내 전화로 상담을 하려고 하지만 개인 연락처를 요구하거나 수시로 상담, 체크 등을 원하는 학부모들이 더 많다”며 “주변에서 업무용 휴대전화를 따로 개통하는 경우도 많아서 그렇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문제가 만연하자 학원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학원갑질 체크리스트’가 공유되기도 한다. △학원은 동네 장사인 것 아시죠 △돈을 냈는데 공휴일에 왜 쉬냐 △학원이 왜 방학이 있냐 등 발언을 하는 학부모는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영어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 B씨는 “학원 강사도 학교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있고, 나름의 사명감도 있다”며 “단순히 돈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학원 강사 보호엔 관심 없는 정치권·당국
가장 큰 문제는 학원 교사들이 ‘갑질’에 시달려도 이를 보호할 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교권 보호를 위해 정치권 등에선 교권보호위원회의 기능 확대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학원 강사들은 아예 ‘교원’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교육 당국도 “학원 강사들에게 (학생이나 학부모가) 갑질을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학부모의 강한 민원 제기가 있을 경우 학원 경영진 입장에선 강사를 그만 두게 하는 손 쉬운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학원업계 한 종사자는 “학원은 규제 산업이라 ‘아동학대’ 등 송사에 휘말릴 경우 학원을 폐업할 수도 있을 만큼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며 “학원가의 교권 침해 문제가 수면 위로 많이 올라오지 않는 것은, 문제가 커질 것 같으면 강사를 자르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유원 한국학원총연합회 회장은 “학교에 비해 문제 횟수 자체는 적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개인적 차원에서의 해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대형학원 관계자 C씨는 “공식적인 민원·제보 창구를 마련하고, 직접적인 마찰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