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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악조건하에서 기업들이 은행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지만 금리 인상으로 은행의 문턱이 더욱 높아지자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한계 상황에 봉착하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1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지난 8월 신규 취급액 기준 4.65%로 가계 대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4.34%)를 앞질렀다. 지난해 말부터 각종 규제로 가계 대출을 늘리지 못한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두고 경쟁을 하면서 중소기업 대출 금리가 주담대보다 낮았는데 이런 추세가 반전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기업들의 주된 자금 조달처였던 회사채 시장이 급격히 냉각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기준금리 상승으로 은행들이 앞다퉈 대출 금리 뿐만 아니라 예적금 금리도 같이 올리니 회사채의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대출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중소기업들이 최근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출 문의를 해 오고 있다”며 “다만 모든 기업들에 필요한 만큼 대출을 해 줄수는 없는 상황이라 심사를 더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기업들의 목줄을 더욱 죄는 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원·달러 환율이다. 환율 급등은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기업 실적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기업들의 신용등급 개선은 더욱 어려워지며 대출 금리 인하 요인도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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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중소기업발 부실 대출 뇌관이 터지지 않도록 지난달 종료 예정이었던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를 재연장했다. 또 상환이 어려운 취약 차주들엔 30조원 규모의 채무 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을 연계해 이들에 대한 대출 연착륙을 시도 중이다. 아울러 최근 중소기업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통해 총 6조원 규모의 금리 수준을 낮춘 고정금리 대출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이 같은 조치는 잠재 부실을 이연함으로써 향후 더 큰 부실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센터장은 “단기 위기 땐 부실을 이연하는 게 최선일 수 있지만, 지금처럼 장기적 위기 국면에선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정부의 이 같은 조치들 외에 현 상황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 버금가는 위기인 만큼 금융당국의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금리 환경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다만 일시적으로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 수익 창출에 큰 문제가 없는 기업들을 식별해 정책금융 당국에서 추가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 기관을 통해 지원을 한다면 그들의 자금 회수 등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그들의 이익을 위한 장치도 함께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부가 현재 위기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여 현재 펼치고 있는 새출발기금 등의 정책들을 코로나19에 한정하지 말고 전반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당국은 새출발기금처럼 시기나 업종을 가리지 말고 전반적인 차원에서 은행과 기업들이 채무 조정을 할 수 있는 판을 깔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