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라이프자산운용 사옥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1세대 가치투자 대가’로 불리는 이채원 의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국내 최초 가치투자 펀드인 ‘동원밸류 이채원펀드’를 선보였다. 롯데칠성(005300) 등 낮은 주가수익비율(PER)·주가순자산비율(PBR) 주식을 편입해 설정 기간 1년 이전에 수익률 130%를 기록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치투자 흐름에도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19 이후 증시에 몰려온 유동성 쓰나미에 성장주가 득세하던 시장에서 가치주는 더욱 외면받았다. 과거와 달라진 시장 환경 속에 그는 전통적 가치투자의 한계를 직면했고, 그 열쇠를 ESG에서 찾았다. 그가 ‘ESG 우호적 행동주의’를 표방하며 지난해 라이프자산운용을 출범한 배경이다. 올 하반기엔 ‘라이프 한국기업ESG향상 펀드’ 등에 이어 새로운 지주사 펀드에 주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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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운용업계에만 34년을 몸담으며 온갖 풍파를 경험한 그는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온 건 50년 만에 처음”이라며 운을 뗐다. 이 의장은 “과거 1970년 중반 1차 오일쇼크 때 인플레이션이 크게 오며 유가 전년 대비 상승률이 60~70% 수준을 기록했고, 미국 S&P 500 지수는 1년 새 48% 하락했다”며 “미 경기지표가 최악을 보이는 가운데 회복세를 보였는데, 전고점을 회복하지 못한 횡보세가 7년을 갔다. (지금의) 코스피도 유사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2008년 미국 리만브라더스 파산 사태 때 코스피가 2100에서 900까지 순식간에 떨어진 시기도 회상했다. 이후 1~2년 만에 2100포인트를 회복했지만, 2010~2016년에 걸쳐 2000선의 박스권 장세가 지속됐다는 설명이다. 올해엔 그야말로 변수들이 총출동했다는 평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발 공급망 교란,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미·중 갈등 심화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렸다. 코스피는 올 하반기 베어마켓 랠리와 함께 반등세를 보인 이후 오랜 횡보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 의장은 “코스피는 올 들어 전고점(2021년 7월)보다 약 30% 빠졌었고(12일 기준 -24%), 이는 국가 부도 위기까지 갔던 과거 굵직한 사례와 맞먹는 큰 하락폭이다. 현 시점 이 모든 악재를 80% 이상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하는데, 워낙 낮아서 큰 폭 반등할 수 있겠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이상 현상들은 쉽게 진압되지 않을 것이고,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거품도 있어 이전 사례들처럼 전고점을 뚫긴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르면 9월 정도 인플레이션 지표가 둔화세를 보이면 급반등이 나올 수 있지만, 이후엔 반락한 데 이어 2~3년간 횡보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성장주 주춤하며 가치주 기회왔지만…ESG 봐야”
이 의장이 가치주에 주목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가치 영역에선 현금이 많고 금리가 올라도 이자 수익이 늘어난다. 예로 소재 기업은 오히려 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 6~7년 가치주가 소외되며 밸류에이션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예전보다 유리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전통적 가치주는 한계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이 의장은 “과거엔 자산·수익가치, 배당을 많이 주는 가치주를 선호했는데, 이 시대엔 안 맞다”며 “성장주 사이클이 오면서 2015~2019년 가치주 성과가 굉장히 안 좋았는데, 특히 ESG가 가장 큰 약점이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고 했다.
이 의장은 “환경(E) 측면에서 보면 대부분의 전통 기업이 이산화탄소를 제일 많이 배출하는 철강·시멘트 등이고, 투자자와의 소통 문제로 인해 사회(S)에서도 소외되고 있다”며 “특히 거버넌스(G·지배구조) 측면에선 대주주와 소액주주와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아 저평가되고 있다. 예컨대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를 더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주가가 오르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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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착안해 이 의장은 ‘ESG 우호적 행동주의’를 반영해 한 단계 진화한 가치투자 체계를 구상했다. 기업 경영진과 공개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지난 4월 라이프자산운용이 SK(034730)에 자사주 소각과 리스크관리위원회 신설을 요구하는 내용의 주주서한을 발송한 게 대표적 사례다. 현재 진행되고 있고, 이르면 올 연말께 윤곽이 잡힐 것으로 관측했다.
하반기엔 지주사에 투자하는 신규 펀드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 의장은 “지주사 펀드를 새로 출시해 총력을 다할 생각”이라며 “지주사 저평가의 큰 이유는 ‘더블 카운팅’인데, 과거와 달리 세대교체가 되면서 일감 몰아주기, 편법 증여 등이 어려워졌고 배당도 늘고 있다. 행동주의를 통해 주주환원정책이 강화되면 ‘프리미엄’을 받아 주가 상승 여력이 더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원칙대로 투자해야 한다는 철학엔 변함이 없습니다. 가치주는 최근 1년 성과가 성장주보다 상대적으로 좋았고, 장기적으로 ESG 변화 의지가 강한, 주주와 운명을 같이 할 가치주 분할 매수가 유효하다고 봅니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투자자들의 성향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버는 것보다 잃는 것을 원치 않고 연 5~10% 목표 수익률 추구한다면 배당수익률이 높고 내재가치가 좋은 가치투자에 적합하다고 봅니다.”
◇ 이채원 의장은
△1964년 출생 △중앙대 경영학 학사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8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국제부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 상무 △2006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CIO)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고문 △2021년~ 라이프자산운용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