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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1일 오전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지사에 대한 상고심 판결을 선고한다.
앞서 1심은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에 대해 징역 2년, 선거법 위반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지만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에 대해선 징역 2년을 유지했다.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할 경우 김 지사는 지사직을 상실한다. 이 경우 1심 법정구속으로 77일 간 복역했던 김 지사는 남은 22개월을 교도소에서 복역해야 한다. 2심 판결이 파기될 경우엔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
김 지사는 지난 2016년 12월부터 2018년 2월 사이에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운영자인 ‘드루킹’ 김동원 씨 일당과 공모해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다음·네이트 내 뉴스 기사 약 8만 개의 댓글 중 125만 개 가량의 추천/반대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직전까지 댓글 조작
2016년 연말은 국정농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가능성에 따른 조기 대통령선거 성사가 높게 점쳐지던 시기였다. 댓글 조작은 대선을 넘어 2018년 지방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까지 이어졌다.
공판 과정에서의 쟁점은 댓글 조작에 사용된 매크로 프로그램(자동·반복 작업 기능) ‘킹크랩’ 운영에 대한 김 지사의 인식이다. 드루킹 일당이 댓글 조작을 위해 직접 제작한 킹크랩은 다수의 아이디를 활용해 자동·반복적으로 추천/반대 작업을 수행한다.
김 지사를 기소한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킹크랩 제작과 운용 과정에서 김 지사가 깊숙이 개입한 댓글 조작의 공범이라고 결론 냈다. 김 지사가 2016년 6월 드루킹을 소개받은 이후 그에게서 정치권의 댓글 기계 사용 실태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고 같은 해 11월 9일 경기도 파주 소재 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해 킹크랩 필요성을 들은 후 직접 프로토타입(시제품) 시연을 봤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특검은 김 지사가 킹크랩 시연을 본 후 ‘허락이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고개를 끄떡여서라도 허락해 달라’는 드루킹의 요청에 고개를 끄떡이며 사실상 킹크랩 개발을 승인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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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사는 재판 과정에서 드루킹으로부터 브리핑을 받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킹크랩 시연 참관과 승인은 강력 부인했다. 김 지사 측은 “드루킹 일당이 서로 진술을 짜 맞춰 허위 진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모두 김 지사의 킹크랩 시연 참관이 객관적 사실에 의해 입증된다며 김 지사 측 주장을 일축했다. 법원이 킹크랩 시연 참관을 인정한 주된 근거는 김 지사와 드루킹의 관계와 함께 네이버 접속 기록이었다.
법원은 김 지사와 드루킹의 밀접한 관계가 범행 가담 배경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했다. 드루킹은 지난 2016년 10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약 49회에 걸쳐 온라인 정보보고 문서를 작성해 김 지사에게 보냈다. 2016년 12월 28일에 보낸 정보보고엔 ‘현재 킹크랩 완성도는 98% 정도입니다’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 지사는 드루킹의 일방적 메시지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여럿 드러났다. 김 지사가 기사 웹사이트 주소(URL)를 보내면 드루킹이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다른 메시지에선 김 지사가 드루킹에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아울러 두 사람은 보안이 강력한 메신저인 시그널을 이용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드루킹이 1주일로 설정해 둔 메시지 자동 삭제 기능을 김 지사가 1일로 재설정하기도 했다.
1심은 “김 지사가 킹크랩을 이용한 댓글 조작을 단순히 인식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루킹의 댓글 작업을 지속적으로 승인하고 나아가 이를 계속하도록 묵시적으로 독려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과문 초안 공유·文 기조연설 도움 등 친밀 관계 확인
더욱이 드루킹이 김 지사에게 전달한 ‘재벌 개혁 계획 보고’ 내용은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의 기조연설문에 일부 포함되기도 했다. 김 지사는 드루킹에 기조연설 이후의 경공모 반응을 물었다. 그는 또 대선 과정에서 한 사이트에 사과문을 올리기 전 초안을 드루킹과 공유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복심으로 불리는 김 지사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드루킹으로부터 측근인 도모 변호사의 일본대사와 오사카총영사 임명 요청을 받고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문의한 후, 센다이총영사를 역제안하기도 했다.
법원은 또 네이버 접속 로그 기록이 킹크랩 시연 참관을 뒷받침했다고 판단했다. 김 지사 앞에서 시연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에만 다른 접속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드루킹 일당 중 킹크랩 개발을 담당한 우모 씨는 킹크랩 프로토타입을 개발하며 네이버 아이디 3개를 이용해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는 테스트 초기인 지난 2016년 11월 4~5일 사이 테스트 초기 1개 아이디만 활용하다 6일부터 순차적으로 다른 2개의 아이디를 활용했다. 우 씨는 이 과정을 거쳐 같은 달 7일 오전 4시께 3개 아이디 모두 제대로 킹크랩에서 구동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 아이디의 로그 기록은 그 이후 하루 한두 차례 짧은 접속만 이뤄졌으나 김 지사의 킹크랩 시연 참관 시간으로 추정되는 11월 9일 오후 8시 7분 15초부터 8시 23분 53초까지 16분 동안 3개 아이디가 모두 로그인됐다. 1·2심 재판부는 “시연 일자에 맞춰 킹크랩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테스트해 왔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한다”고 판단했다.
김 지사 측은 항소심에서 ‘닭갈비 포장’을 들어 “시연 참관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시연 참관이 증명된 이상 특검이 그 이후 행적까지 일일이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일축했다.
1심은 “목적 달성을 위해 거래의 대상이 돼선 안되는 공직을 제안하기에 이르며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수긍하기 어려운 변소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심도 1년 9개월 간의 심리 끝에 “온라인상의 건전한 여론 형성을 방해하고 결국 사회 전체의 여론까지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