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에서 의미 찾지 마라 그냥 그렸다"

오현주 기자I 2019.08.26 00:45:00

가나아트센터 강광 ''아름다운 터에서'' 전
직접 겪은 비극적 현대사 자연에 녹여
모노톤에 구상·비구상 섞은 조합으로
2000년대 세련된 현대적 양식·패턴도
화업50년 되돌리며 회화 20여점 걸어

작가 강광이 자신의 작품 ‘풍경’(2000) 앞에 앉았다. 현대적 세련미가 물씬한 양식·패턴을 시도한 2000년대 작품 중 대표작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연 초대전 ‘아름다운 터에서’에는 강 작가의 화업 50년에 점점이 박힌 회화 20여점이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 처음은 잿빛이다. 붉은 나뭇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쳐오르다가 실핏줄이 돼 흙바위에 스밀 때도(‘풍경-나무’ 1980), 지하에서 텅빈 눈만 배꼼이 내민 누군가의 머리 위로 역시 그 붉은 버섯구름 한덩이가 피워올랐을 때도(‘그날’ 1981). 세상은 어둠뿐이었다.

#2. 과정은 황토빛이다. 세월이 첩첩이 쌓은 산등성이 아래 깊이 숨겨둔 꽃 한 송이 피울 때도(‘구름’ 1998), 흙탕물을 거스른 물고기 한 마리가 파닥거리는 곁에 푸른 윤곽뿐인 들꽃을 잔뜩 심어뒀을 때도(‘4월의 계곡’ 1996). 사물은 온통 흙빛 갈색에 묻혀 있었다.

#3. 마무리는 오색이다. 오각형벽 사각지붕 집들로 푸른 동네를 꾸미고 분홍색 점점으로 야자수 한 그루 세울 때도(‘마을풍경’ 2000), 백두대간 같은 등뼈를 가진 호랑이 한 마리 불러 주황·흰색 꽃잎 초록 잎사귀 듬성한 꽃밭에 나란히 붙일 때도(‘지킴이’ 2007). 체념한 세상인가 밝아진 세상인가.

세월은 가고 그림은 변했다. 색도 달라지고 소재도 달라지고. 무슨 일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가. 그러나 궁금한 것은 보는 이의 몫일 뿐. 정작 그림 주인의 대답은 무심하기만 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그렸다. 내 그림에서 의미를 찾지 마라. 그냥 그렸다.”

강광의 ‘그날’(1981). 합판에 그린 유화다. 지하에서 텅빈 눈만 배꼼이 내민 누군가의 머리 위로 피어오른 붉은 버섯구름 한덩이. 1980년대 강 작가는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자연에 빗대어 담아내는 작업에 몰두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색색의 그림 한 점보다 거기에 따라붙는 말들이 더 화려한 미술계. 그런데 여기 이 작가는 그저 침묵으로 대신할 뿐이다. 수식도 없고 치장도 없다. 10대 어린시절에 한국전쟁을 치러낸 것도 모자라 20대 청춘을 베트남전장에서 보냈다. 죽다가 살아 돌아온 고국에선 민주화운동 소용돌이에 휘말려 현대사 격변기를 제대로 겪어냈다. 신군부에 의해 김경인·신경호·임옥상·홍성담과 함께 ‘불온작가 5인’으로 찍혀 고초를 겪었으니. 그 혼란스러운 상황이 입을 다물게 했을까. 차라리 붓이나 쥐자 했을까.

작가 강광(79)이 50년 화업을 되돌아본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마련한 초대전 ‘아름다운 터에서’다. 지난해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연 초대전 ‘강광, 나는 고향으로 간다’ 이후 1년만. 하지만 서울에서 연 개인전으론 12년의 공백이 있다. 그렇다고 거창한 회고전이랄 것도 없다. 1970∼2000년대 회화 스물서너 점 단출하게 걸고 다시 묵언수행에 들어선 듯하니까.

강광의 ‘봉화도’(1988). 강 작가 스스로가 중요하다고 꼽은 작품이기도 하다. 제주4·3사건을 다뤘다지만 마치 약식지도인 양 삼각 산봉우리마다 봉화 하나씩 올린 게 전부다. 100호 규모의 그림 세 점을 연결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현대사 비극부터 현대적 패턴까지…상징·응축으로

흔히 강 작가를 두곤 이렇게들 말한다. “직접 경험한 혼란스러운 현대사를 자연 혹은 오브제에 간접적으로 녹여냈다.” 틀린 말은 아닐 거다. 붉게 물든 강을 가로지르는 거북이 같은 사람 곁에는 검은 나무들만 우뚝 세웠고(‘헤엄치다’ 1989), 제주4·3사건을 다뤘다는 거대한 화면은, 마치 약식지도인 양, 삼각 산봉우리마다 봉화 하나씩 올린 게 전부(‘봉화도’ 1988)니까. 알 듯 말 듯한 상징으로, 한 번 추측해보라는 식으로 역사인식·현실비판을 응축하고 있으니. 하지만 강 작가는 이조차에도 그다지 동의를 안 하는 눈치다. “자연을 보고 느낀다기보다 사람 사는 세상의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뭉뚱그린다.

강광의 ‘구름’(1998). 1990년대 향토색 해학이 가득한 민화풍으로 현실을 변주한 때 작업했던 대표작이다. 세월이 첩첩이 쌓은 산등성이 아래 깊이 숨겨둔 꽃 한 송이를 막 피울 참이다. 위쪽에 북두칠성 문양이 보인다. 후기작에 간간이 등장하는 상징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강 작가 작품의 특징은 모노톤 색감에 구상과 비구상을 섞은 조합에 있다. 이 구성은 1960∼1980년대 한국현대사의 생존비극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란 두 갈래로 잡아냈을 때도, 1990년대 향토색 해학이 가득한 민화풍으로 현실을 변주했을 때도, 2000년대 현대적 세련미가 물씬한 양식·패턴을 강화했을 때도 일관성 있게 유지됐다. 색이 바뀌고 소재가 달라지는, 작가로선 큰 변신이라 할 화풍의 변화에 대해서도 그이는 “그림은 자꾸 변해가야 한다”는 말뿐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는 그이가 겪었을 마음의 변화를 따라갈밖에.

그런데 강 작가가 딱 한 가지 특별한 반응을 보인 게 있다. 호랑이다. 전시에는 호랑이를 소재로 한 회화 세 점이 걸렸는데. 특히 그이를 태운 휠체어가 오래 멈춰 있던 곳은 ‘호랑이가 있는 풍경’(2000) 앞. “우리 호랑이가 나타나서 우리 것이 아닌 것을 물리쳐줬으면 하는 염원”이라고 모처럼 길게 말했다. “생물학적인 호랑이가 아닌 한국의 호랑이라는 강인하고 멋진 뜻을 내포한 표현”이라고.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듯, 붉은 톤의 호랑이가 네 발을 땅에 딱 붙이고 엎어져 있는 그림에는 ‘우리의 호랑이가 마리산에 살아야 한다’는 문구를 띄엄띄엄 새겨놨다.

작가 강광이 자신의 작품 ‘호랑이가 있는 풍경’(2000) 앞에 앉았다. 호랑이는 강 작가가 유일하게 ‘의미를 심은’ 소재다. “우리 호랑이가 나타나서 우리 것이 아닌 것을 물리쳐줬으면 하는 염원”이라고 소개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미필적 절필…“심각하게 느껴질 충격을 기다린다”

1970년대는 제주에서 보냈다. 1969년부터 1982년까지라니 14년이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것이 1965년이니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직후였을 거다. 그이의 작품에 스며 있는 사건·사고 중 드문드문 제주4·3사건이 등장하는 건 지역민으로 속 깊이 비감을 공감했던 배경이 있을 거다. 제주를 벗어난 건 인천대 미술학과 교수로 임용되면서다. 2006년까지 얼추 20년이었다. 지금은 강화도 마니산 기슭에서 지낸다. ‘아름다운 터에서’(2005), ‘아름다운 터-마을’(2007), ‘5월의 풍경’(2007) 등 아기자기한 서정성을 품은 작품들은 모두 그곳에서 나왔다. 무수한 그림에 둘러싸인 작업실 풍경이 눈에 선하지만, 정작 그는 2012년 이후 붓을 내려놓은 상태다. 미필적 절필이라고 할까.

강광의 ‘아름다운 터-마을’(2007). 2006년 인천대 미술학과 교수직에서 퇴임하고 자리잡은 강화도 마니산 기슭의 작업실에서 나온 작품이다. 아기자기한 서정성을 내뿜는 작품들이 여기서 많이 나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강광의 ‘지킴이(2007). 호랑이를 소재로 삼은 작품 중 한 점이다. ‘모노톤 색감에 구상과 비구상을 섞은 조합’으로 일관한 화업 50년이지만 이즈음 작품은 초기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즐겨 쓴 청회색 톤 대신 등장한 화사한 색감이 큰 변화 중 하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무례를 무릅쓰고 물었다. “왜 그리기를 멈추셨습니까?” “그림을 그릴 만한 의미를 못 느꼈어.” “어떤 의미를 말하시는 겁니까?” “작가에게는 가해지는 충격이 가장 중요해. 심각하게 느껴지는 그 충격이 와야 하는데. 나태한 상태에서 세월을 보내다보니 좋은 작품이 안 나와.” “새 작품을 보려면 큰일이 생기길 바라야 하는 건가요?” “그게 솔직한 마음이야. 뭔가 생겨야 할 듯하네.”

지난해 9월 강 작가의 작품이 처음으로 경매(제149회 서울옥션 미술품경매)에 나왔다. 미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작품은 1982년에 그린 ‘풍경-썰물’. 황량한 인천 앞바다의 풍경으로 척박한 현실을 대신한 그 그림은 응찰가 1050만원을 쓴 새 주인을 만났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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