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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분열의 정치' 재개한 트럼프‥'집권플랜’ 시즌2

안승찬 기자I 2019.07.17 00:00:00

유색인종 하원의원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발언
인종차별 비판 나오자 “내게 사과하라” 되려 큰소리
백인들의 외국인 혐오 부추겨 지지층 표 집결 노린 전략
트위터에도 불똥..“트럼프 막말 용인하나” 지적도

(사진=AFP)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이준기 뉴욕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막말’을 다시 내뱉고 있다. 미국 시민들의 투표로 당선된 민주당의 유색인종 하원의원을 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논쟁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백인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극해 지지층의 표를 끌어모으는 트럼프식 ‘분열의 정치’가 다시 시작됐다는 평가다.

◇유색인종 의원 4명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폭탄 발언

일요일이던 지난 1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민주당의 초선 하원의원 4명을 겨냥해 “총체적 재앙에다 부패하고 무능한 나라 출신들”이라면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서 망가지고 범죄로 들끓는 나라를 먼저 바로잡아는 건 어떤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뉴욕)·일한 오마르(미네소타)·라시다 틀라입(미시간)·아야나 프레슬리(매사추세츠) 등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민주당의 유색인종 여성 하원의원 4명이 최근 트럼프 정부의 불법 이민자 아동 격리와 이민지 일제 단속 정책 등을 비판한 것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작정하고 공격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에서 헌법으로 금지하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들 4명 의원은 모두 미국 시민권자다. 오카시오 코르테스 의원, 틀라입 의원, 프레슬리 의원은 아예 미국에서 태어났다. 조상의 출신지를 들먹이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인종차별적 발언이다.

4명의 의원은 거세게 반발했다. 오마르 의원은 15일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의 어젠다가 백악관 정원까지 이르렀다”고 개탄하면서 “대통령이 우리의 헌법을 더는 비웃지 못하게 해야 할 때다. 우리가 대통령을 탄핵해야 할 때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틀라입 의원도 “(트럼프는)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에 관한 교과서”이라며 “대통령의 혐오적 언행을 허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 4명의 의원과 갈등을 빚었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트위터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언제나 ‘미국을 다시 하얗게’ 만드는 것임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적었다. 로이터는 펠로시 의장이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트윗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수전 콜린스, 윌 허드 등 10여명의 공화당 의원들은 트위터 등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CNN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세대를 걸쳐 자랑스럽게 여겨온 ‘멜팅팟’(Melting Pot·용광로)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며 “인종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반(反)미국적”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공동 기자회견하는 미국 민주당 여성 초선 하원의원 4명. 왼쪽부터 라시다 틀라입, 일한 오마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아이아나 프레슬리 의원. (사진=EPA 연합뉴스)
◇ ‘분노와 분열’..욕 먹더라도 지지층 표 집결 노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사과하라고 큰소리를 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급진적 좌파 여성 하원의원들이 자신들의 더러운 언어와 끔찍한 일들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대통령실에 언제 사과할 것인가”라며 ”아주 많은 사람이 그들의 무섭고 역겨운 행동에 화가 났다”라고 썼다.

그는 “민주당이 이런 인기 없고 대표성 없는 여성 하원의원들의 행동과 입에서 나온 더러운 말과 인종차별적 증오 속으로 단결하고 싶다면,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며 비아냥거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은 지난 2016년 대선을 연상시킨다. 대선후보 시절 트럼프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향해 “강간범”이라고 표현했고, 취임 후엔 중남미·아프리카 국가를 “똥통(shithol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당시에는 뜨거운 논란이 일었지만, 미국의 백인 유권자들은 결국 트럼프에 표를 던졌다. 미국 유권자의 63%를 차지하는 백인들의 반(反)이민 정서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전략을 또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위험하고 욕을 먹더라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확실히 자신의 지지층 표를 챙기는 ‘분열의 정치’다.

불똥은 트위터로도 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막말’을 올리고, SNS 상에서 그의 말이 끝없이 재생산되면서 이슈를 몰아가는 전략이다. ‘트럼프 막말’ 공치공학에서 트위터는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다.

문제는 트위터가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을 용인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는 점이다.

트위터는 최근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 등 지도자들이 규정을 위반한 트윗을 올리면 트윗에 라벨 표시를 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종이나 성적 지향, 종교, 장애 등을 이유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트윗에는 자체적인 경고를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위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에 대해서는 자사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라벨 표시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남부 빈곤법센터의 하이디 바이릭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트위터의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은 명백하다”며 “적어도 라벨 표시를 달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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