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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정족수 미달로 상장사들의 주총이 부결되는 심각한 사태가 우려되는 데에는 시행 10년째인 전자투표가 아직도 자리잡지 못한 탓이 크다.
전자투표제는 주주총회에 직접 출석하지 않아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참석자의 찬반 비례에 따라 의결권이 행사되는 ‘섀도보팅(shadow voting,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가 지난 2017년말 폐지된 뒤, 이를 대체할 방안으로 거론됐지만 이용률은 여전히 ‘답보상태’다.
◇ 상장사 절반, 아직도 전자투표 도입 안해
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예탁원의 주총 전자투표시스템 이용 계약을 체결한 상장사는 총 1204개사(유가증권 359개, 코스닥 845개)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상장사(2111개사)의 57% 수준이다. 예탁원의 전자투표 시스템 이용 계약 상장사는 △2015년 417곳 △2016년 732곳 △2017년 1103곳 △2018년 1204곳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절반 가량의 기업은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않는 실정이다.
게다가 계약만 해놓고 이용하지 않는 기업들이 태반이어서, 지난해의 경우 실제로 전자투표를 이용한 기업은 503개사(상장사의 24%)에 그쳤다. 전자투표 도입 기업을 기준으로 봐도 실제 이용률은 41%라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액면분할을 통해 국민주로 거듭난 삼성전자도 올해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준비부족을 이유로 일단 미루기로 했다. 주주들의 전자투표 이용률도 3.9%(2018년 3월말 기준)에 불과해 사실상 상장사와 소액주주들에게 모두 외면받고 있는 셈이다.
중소 규모 코스닥 상장사들은 대체로 비용과 부족한 인력 등을 들어 전자투표 도입을 미루고 있다. 100만~500만원의 비용을 들여 전자투표를 이용해도 막상 주주들의 투표율이 저조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미래에셋대우가 올해 첫선을 보인 무료 전자투표 시스템 ‘플랫폼 V’는 70곳 이상의 상장사가 계약한 것으로 파악된다.
전자투표 도입시 기존 인력들의 업무가 가중된다는 점도 부담이다.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과외 업무가 추가되는데, 돈을 더 들이더라도 의결권 위임 대행업체를 쓰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대기업은 이른바 ‘소액주주들의 반란’ 우려에 전자투표 도입을 꺼리는 기류가 있다. 특히 주가가 부진할 경우 소액주주들이 이를 빌미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뭉쳐 단체로 주총 안건에 반대 표를 던질 경우 심각한 경영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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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들의 주총에 대한 ‘무관심’도 전자투표제가 정착하지 못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장기 보유보다는 단타 매매를 통한 시세 차익이 목적인 주식투자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영권분쟁 등 주가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이 아니라면 주총에 시큰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소액주주의 평균 주식보유 기간(2017년 기준)은 코스피 7.3개월, 코스닥 3.1개월에 불과했다. 워낙 단기투자자가 많다 보니, 전년도 12월 31일 주주명부를 기준으로 이듬해 3월 열리는 주총에서는 주식 손바뀜이 일어난 경우가 허다하다. 3.9%라는 주주들의 저조한 전자투표 이용률은 이런 현실이 투영돼 있다는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자투표가 섀도보팅을 대체하기 힘들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소액주주의 단기투자 행태 등으로 전자투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3% 초과 의결권 제한 규정 등 과도한 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주총 부결사태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